“우리가 일곱 달 반 동안 해온 일은 촛불민심을 받들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일은 1년, 2년 금방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장관 등과 함께한 만찬에서 밝힌 소회다. 적폐 청산 작업의 연속성을 강조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염원을 안고 출범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들불같이 번진 ‘이게 나라냐’라는 분노와 탄식이 ‘이게 나라다’라는 외침으로 전환하는 과도기 시기였다. 하지만 과도기 정권이 과도기 시기와 겹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도 노출했다.
◆허니문 없었던 文정부, 이중부담 안고 출발
“이중적 압박감이 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권 초반을 이같이 회고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따른 무너진 국가시스템 등 ‘내치 위기’와 북핵 위기 등 ‘외치 위기’라는 이중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국정운영의 나침판과 설계도가 미흡한 채 출발한 셈이다.
여소야대 정국은 문재인 정부의 입지를 한층 좁혔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트럼프식 행정명령’인 업무지시를 통해 강한 드라이브를 건 것도 이 같은 한계와 무관치 않았다. 여소야대의 한계는 올해 연말까지 정부를 괴롭혔다. ‘소수 여당’의 결말은 빈손 국회였다.
◆‘소통과 쇼(show)통’ 사이··· 협치·인사 ’불합격‘
다만 문 대통령은 파격적인 소통 행보에 나서면서 ‘불통의 대명사’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뤘다. 청와대 참모진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탈권위 리더십’이나 일정 중 국민 속으로 들어가 사진 찍는 모습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간극을 좁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기저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협치와 인사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우선 정책인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은 국회에 제출한 지 45일 만에 통과(7월 22일)돼 역대 최장기간 추경심사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새해 예산안은 국회 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을 시행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인사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 자체였다. 취임 직후 단행한 이낙연 국무총리부터 1기 내각의 마지막 퍼즐인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까지 맞추는 데 걸린 시간은 195일(정부 출범 기준)로, 국민의정부(174일)를 넘었다.
안경환(법무)·조대엽(노동)·박성진(중소벤처기업) 후보자 등이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5대(병역 면탈·부동산 투기· 탈세·위장 전입·논문 표절) 배제’ 원칙에 걸리면서 끝내 낙마하자, 청와대는 음주운전과 성 비위를 추가한 ‘7대 인사 원칙’을 제시했다.
◆흔들린 한반도 운전자론··· 적폐 청산 피로감도 난제
북핵 위기는 정부 2년차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이다.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문 대통령의 대북 구상인 ‘한반도 운전자론’은 내상을 입었다. 이는 남북관계에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대화·압박 병행론을 통해 북핵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북한의 제6차 핵실험으로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으면서 ‘한반도 운전자론’의 근본적 한계론이 고개를 들었다.
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번번이 무산돼 문재인 정부도 2년차 때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93년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역대 정권마다 핵무장 시위에 나섰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3 지방선거)는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내년 초 본격적으로 지방선거 국면으로 전환한다. 정부 심판론과 '개헌 대 호헌’ 등 정치 프레임이 판친다면, 개혁입법도 줄줄이 좌초할 것으로 보인다. 민생은 간데없고 ‘적폐 청산 대 신(新) 적폐 청산’ 프레임만이 나부낄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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