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이 있다.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을 쌓고 있는 김은선씨와 맞닿아 있다.
김은선 지휘자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인물이다. 우리나라 클래식 저변이 아직 넓지 못한데다 해외를 주요 거점으로 활동하는 만큼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는 떠오르는 스타다. 지난해 7월에는 독일 현지신문이 그녀의 공연 소식과 이야기들을 톱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그녀의 성공비결은 악바리 근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이라는 편견과 여성이라는 장벽을 부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워왔다.
그녀의 근성은 언어습득에서 잘 드러난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단원과의 소통을 위해 하루 네 시간만 자며 언어공부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낭시 오케스트라 시절에는 프랑스어를 1년 만에 배워 프랑스 단원들이 크게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편 때문에 성장했다는 편견과도 싸우고 있다. 김은선의 남편은 유럽의 유명 공연기획사 '레빈'의 대표 미카엘 레빈이다. 단기간에 커리어를 쌓은 배경이 남편 덕을 본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는 실력만이 편견을 깬다는 마음가짐으로 맡은 곡의 작곡가와 시대상까지 공부하는 등 완벽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 오케스트라 지휘과에서 최승한 교수에게 지휘를 배웠다. 이후 독일로 넘어가 슈투트가르트국립음악대학에서 오페라지휘전공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고점으로 마쳤다.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8년 5월 스페인에서 열린 헤수스로페즈코보스 국제오페라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다. 그는 콩쿠르 우승으로 왕립 오페라극장(테아트로 레알)의 부지휘자 자격을 얻었다.
2010년 4월 오페라 ‘Il Viaggio a Reims(랭스로 가는 여행)’ 공연을 지휘함으로써 왕립극장 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다.
특히 1850년 설립된 이후 최초로 지휘봉을 잡은 여성 지휘자라는 점은 스페인 내에서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스페인 3대 유력 언론인 엘 파이스(El Pais)는 김은선씨에 대해 “왕립극장 최초의 여성 지휘자며 한국 최초 여성 지휘자”라고 평가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탁월한 능력 뿐 아니라 노력하는 자세와 겸손함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ABC지도 왕립극장 최초 여성지휘자로서 데뷔 무대에 대한 소감과 음악관, 스페인 생활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그는 독일 본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에서 세계적 거장 크루트 마주어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으며 빈 폴크스오퍼, 영국 국립오페라단,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등에서 성공적으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녀의 홈페이지를 보면 올해 7월까지 일정이 차 있는 상태다.
한편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김성재 연세대 석좌교수의 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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