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치주의가 감내할 수준을 넘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입법·행정·사법부는 국민들부터 도를 넘는 불신을 받고 있고, 국민 또한 법질서에 대한 무감각으로 준법의식이 실종된 상태다. 요령과 편법·불법이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일상화됐고, 준법은 ‘고지식’한 융통성 부족으로 따돌림을 받고 있다. 국가운영과 사회시스템 유지의 근간이자 안전판인 ‘법질서’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붕괴돼 가고 있다.
이는 국가가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적용하는 과정에서의 일관성 결여가 자초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는 형평에 어긋난 판단, 결정, 시행 등으로 국민들로부터 극심한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다. 국민 또한 법질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때로는 국가에 대한 정당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을 피해 자신의 이득을 얻거나 ‘떼법’으로 목적을 달성한 것을 영웅담처럼 얘기한다.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했다며 탄핵결정으로 파면돼 재판을 받고 있다. 법원은 지난해 초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이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권교체 때마다 권력에 굴종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버린 검찰은 뿌리부터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현주소다. 법치주의가 위기에 놓이면 국가운영 또한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래픽=한국법제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이 발간한 ‘2015 국민법의식 조사연구’에 따르면 대만민국 국민 절반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의 준법정신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50%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니까’라는 응답이 42.5%로 가장 높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18.9%), ‘법을 지키는 것이 번거롭고 불편해서’(11.2%), ‘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11.0%), ‘법을 잘 몰라서’(7.2%), ‘법을 지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모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6.8%)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연구 보고서는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니까’라고 응답한 2015년 조사결과(42.5%)가 2008년 조사결과(34.3%)보다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런 조사결과는 언론보도에서도 크게 부각됐듯이 일부 계층이 범죄행위 등을 하고도 처벌을 받지 아니하거나 또는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처벌을 받는 등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법질서 회복을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들의 법의식 자각이 앞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고 훌륭한 강령을 제시한다 해도 결국 법의 수혜대상이자 감시대상인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불균형과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법조인협회 김정욱 회장은 “대한민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경험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은 위기를 극복해야 할 국면”이라며 “법치주의 확립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인데 이를 위해선 제도 개선과 더불어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더욱 고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 제도에 대한 손질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법무법인 명경 김재윤 변호사(39·사법연수원 42기)는 “법치주의에 대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실질적이고 규범력 있는 법률을 만드는 것을 전제로, 입법·집행·적용의 각 단계에서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치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방안으로 △수사권 조정 △검찰 과거사 진상규명 △부패범죄 척결 △예방 중심의 범죄정책 수립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제 개선 등도 해결책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고 검찰이 중요범죄 수사와 인권 옹호라는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고자 한다”면서 “이와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검찰 과거사 위원회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적극 지원하고 후속 조치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뇌물 등 5대 중대 부패범죄를 비롯해 금융범죄, 공공기관 채용비리 등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부패범죄 척결에 역량을 집중하기 바란다”고도 했다. 사후 처리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범죄정책 수립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동·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보다 두꺼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 개선에도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 기관의 개혁TF가 내놓은 개혁안을 중심으로 2018년에는 개혁작업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대부분 입법사항인데, 여야 견해차가 큰 탓에 전망이 썩 밝아 보이진 않다.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법치주의 확립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8일 창간하는 입법 및 사법 전문매체인 ‘법과 정치’는 대한민국의 법질서 회복과 발전을 위해 워치독(Watch Dog)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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