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험금' 사태의 대법원 판결 이후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갖가지 논란이 증폭되자, 20대 국회에서도 입법 정책적인 보완작업이 활발하다.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소멸시효가 지나 보험금을 온전히 받지 못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소멸시효에 대한 다양한 법안이 계속해서 발의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법사위 소위원회에 모두 계류 중이며,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법과 정치]는 최근 국회에 발의된 의원들의 입법들과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제도의 입법적 개선방안' 현안보고서를 바탕으로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제도의 △기간 △기산점 △정지 사유 △설명의무 이행 △사법적 구제수단 등에 대해 현황, 문제점, 개선 방향을 짚어봤다.
◆ A씨 가족의 '자살보험금 신청史'…희비 엇갈린 대법원 판결
2004년 8월 16일 A씨는 교보생명의 '무배당 교보베스트플랜CI'보험을 체결했다. A씨가 가입한 주계약 보험약관은 사망이나 제1급 장해상태 시 보험금 7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특별약관(제9조 재해사망특약)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재해분류표에서 정하는 재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하거나 장해등급분류표 중 제1급의 장해 상태가 됐을 때 5000만원을 추가 지급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A씨는 2012년 2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속인인 가족들은 주계약에 의한 사망보험금과 재해사망특약에 의한 재해사망보험금을 2012년 8월 10일 청구했다. 그러나 교보생명은 주계약에 의한 사망보험금만 지급하고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교보생명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상속인들은 소를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에 대해 2016년 10월 7일 선고를 내렸다. 원심은 교보생명에게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책임이 없다. 하지만 이후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예외적으로 단서에서 정한 요건인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 경과 후 자살 또는 재해 1급 장해상태인 경우에 해당하면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생명보험사들은 이번엔 '소멸시효가 끝났다(소멸시효 완성)'를 주장하며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빅3 생보사를 비롯한 대다수 생보사들은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거부했다. 결국, 금감원은 중징계에 나섰다. 특히 지난해 5월 금융위원회는 빅3 생보사에 대해 제재수위를 확정했다. 2016년 11월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까지 자살보험금 지급을 완료한 신한생명, 메트라이프, 흥국생명, PCA생명, 처브라이프(옛 에이스생명)에 대해서는 0~600만원이라는 약한 수준의 과징금으로 경징계 처분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버티던 빅3 가운데 교보생명은 생보사 최초로 특약 일부 보험상품을 한 달간 판매할 수 없는 '1개월 영업 일부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금융감독원장 전결로 '기관경고'가 확정됐다. 이로 인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1년간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지 못하며, 과징금으로 삼성생명 8억9400만원, 교보생명 4억2800만원, 한화생명 3억9500만원이 부과됐다. 최고경영자인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 신창재 교보생명 사장은 모두 '주의적 경고' 징계를 받았다. 중징계 처리 이후 빅3 생보사는 자살보험금 지급에 나섰다.
◆ 저축·펀드는 5년인데, 보험만 왜 3년?
'상법'이 유독 보험금청구권에 대해 단기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는 보험 제도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속한 결제와 보험 관계의 종결을 통해 보험사업의 원활한 운영을 돕고자 하는 데 있다. △보험은 보험금 지급 여부와 지급금액 확정을 위해 보험사고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증거의 소멸이나 증인의 기억력 감소 등으로 보험사고에 대해 조사가 어려워질 수 있고 △단기의 소멸시효 기간을 인정하면서 지급심사의 실효성 확보 △기금의 안정적 관리 및 법률관계의 조속한 확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기소멸시효제도는 자살보험금 사태와 같이 보험금 지급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소멸시효(3년)이 지나는 경우엔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보험사고 후 2년 이상 장기간의 상해 치료로 장해등급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3년을 지나는 경우도 있다. 장해등급은 사고 후 18개월이 지난 상태에서 판정하게 돼 있는데, 그 기한을 맞추지 못해 보험금을 청구조차 못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20대에 발의된 의원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가운데선 보험금 청구권과 보험료·적립금 반환 청구권 소멸시효를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자는 내용이 많다. 현재 보험금 및 보험료반환 청구권은 저축이나 펀드 등 다른 상사채권의 소멸시효보다 2년 짧은 3년이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입법조사처 역시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기간을 다른 일반적인 상사채권 소멸시효기간(5년)과 동일하게 하도록 정하는 방안이나 손해보험은 3년, 생명보험은 5년 등 제지급금의 성격에 따라 소멸시효 기간을 차등화하는 방안으로 소멸시효 기간의 조정이나 연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정재호·김해영·민병두·박용진 '소멸시효 3→5년' 연장법 발의
단기소멸시효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생기자 국회가 보완작업에 나섰다. 2016년 12월 30일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야 의원 10인과 함께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통상의 상사채권의 소멸시효가 5년인데, 유독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단기로 규정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이는 전적으로 보험사의 이익으로만 돌아간다"면서 개정안 통과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지난해 1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살보험금 사태'의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고, 보험사의 설명의무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과 함께 소멸시효를 5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2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 의원에 따르면, 단기 소멸시효로 말미암아 2010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보험회사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청구를 거절한 건수는 약 3만 여건(110여억원)에 달한다. 민 의원은 "당연히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단기소멸시효로 말미암아 지급되지 못하는 건 용인되기 어렵다. 보험금청구권이나 보험료반환청구권 등이 여타 청구권보다 단기로 규정해야 할 합리적 이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12일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최근 보험금청구권자가 소멸시효 기간 만료 전에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소송의 진행 등을 이유로 지급 여부에 대한 유보적 회신을 지속하고 있다가 소멸시효 기간이 도래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병훈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소멸시효 기간을 5년으로 연장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악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강 전문위원은 "현행법 제651조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는데, 개정안과 같이 소멸시효 기간이 5년으로 늘어나면 보험계약자 또는 보험수익자는 의도적으로 보험회사의 해지권 행사 기간 경과 후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기간 경과 전에 보험금을 청구함으로써 보험사의 해지권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 기간을 소멸시효 기간과 동일하게 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추가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강 전문위원은 소멸시효 기간이 3년으로 연장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5년으로 또 한 번 연장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검토의견을 내놨다.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기간은 최초 상법 제정 당시인 1962년 2년으로 규정됐다가, 2014년 3월 12일 3년으로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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