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986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자 당시 내무부는 이근안을 화성경찰서로 발령해 범인을 잡게 했다.
하지만 반정부 민주 인사들을 잡고 살인적으로 고문하는 데에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았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을 검거하는 데에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6월 항쟁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붕괴되고 1988년 2월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 후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폭로가 줄을 이었고 결국 그는 1988년 3월 화성경찰서에 사직서를 내고 스스로 경찰관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다. 바로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화성연쇄살인사건’ 등의 범인을 잡는 데 사용해야 할 경찰력을 반독재 민주 인사들을 잡고 살인적으로 고문하는 데에 대거 투입한 것.
역사의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당시 이근안이 그의 뛰어난 수사력을 민주 인사들을 잡고 살인적으로 고문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화성연쇄살인사건’ 등의 범인을 잡는 데만 사용했다면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은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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