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란 말을 많이 쓴다.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 이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약칭 과기정통부)'고, 국회의 상임위원회 이름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약칭 과방위)'다. 과학기술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법은 ‘과학기술기본법’이고, 대통령 자문기구로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다.
과학기술계 단체와 기관 이름에도 ‘과학기술’이 많이 사용된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조사·분석·평가 및 예산 조정 배분을 지원하는 전문기관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고, 과학기술 관련 경제사회의 제반 문제와 정책을 연구하는 연구기관으로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연구소로 1966년에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출연연구소의 맏형으로 연구개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관이다. 슈퍼컴퓨팅, 과학데이터 등 과학기술정보 분야의 전문연구기관으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있고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단체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약칭 과총)'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과학기술'이 도대체 뭘까. 우리는 어떤 의미로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걸까.
사전을 한번 검색해봤다. 사전적 정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정의는 당대에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의 의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두산백과사전에는 과학기술을 ‘자연과학, 응용과학, 공학 및 생산기술을 일괄해서 논하거나 취급할 때 쓰이는 총칭’이라고 돼 있고,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도 마찬가지다. 과학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로 밀착돼 있고 과학은 기술의 진보를 촉진한다. 또한 기술이 제기하는 문제는 과학발전을 자극하는 상승효과 때문에 과학기술은 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부연 설명도 달려 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렇게 실컷 설명해 놓고도 과학기술을 영문으로는 ‘scientific technique’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번역하자면 ‘과학적인 기술’이 되는데, 만약 그렇다면 과학은 기술을 수식하는 형용사에 불과한 게 된다.
기술이 과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고, 과학과 기술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도 맞는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분명 다르다. 국어사전에도 다르게 정의돼 있다.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을 말하는데,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는 말이다. 반면 기술은 ‘과학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이나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을 말한다. 과학은 사물과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해 연구를 통해 발전한다. 연구에 해당하는 영어는 리서치(research)다. 찾고 또 찾는 것을 말한다. 기술은 훨씬 실용적이고 그 효과가 가시적이다. 연구개발(R&D)에서 연구는 과학의 영역, 개발은 기술의 영역이다. 과학은 당장의 성과나 효과보다는 기초학문의 토대를 다지기 위한 중장기인 연구가 돼야 하고, 기술은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학기술은 과학적인 기술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을 함께 일컫는 복합어일 뿐이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과학과 기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다. 과학기술이라 붙여 쓰는 것보다 ‘과학 기술’이라고 띄어 쓰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의 제호는 '과학과 기술'이다. 1968년 1월 창간된 잡지이니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그 영문 제호도 'The Science And Technology'
과학적인 기술인가 아니면 과학과 기술인가 하는 문제는 가벼운 이슈가 아니다. 과학기술을 과학적인 기술로 해석한다면, 이는 기술중심적 관점이 돼 정책 추진에서 단기성과가 나는 기술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기초과학이나 과학문화 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 둘 중 더 근본적이고 광범한 개념은 오히려 과학이다. 과학은 기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을 수 없듯이 기술이 발달하려면 과학이라는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생각은 용어로 표출되고 용어는 다시 생각에 영향을 미치므로 용어 사용에도 신중함이 요구된다. 특히 국가경쟁력과 미래를 좌우하는 정책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정의(正義)가 무너지면 바로 세워야 하고, 정의(定義)를 잘못한 거라면 다시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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