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메이커' 양정철이 낸 화제의 책... '세상을 바꾸는...' 샅샅이 읽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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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8-01-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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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을 자산 삼은 정치인…소설가에게 소설 묻는 독서광…시끄러운 건 딱 질색

  • 정권창출 핵심이면서 청와대와 거리 유지하는 '독특한 존재감'... 양씨가 본 인간문재인

[사진=연합뉴스]

"가장 영광의 시간, 뒤안길을 택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펴낸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첫 문장이다. 양 전 비서관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흔히 '3철'이라고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오랜 기간 동안 친분을 유지한 것은 물론 정권 창출의 핵심 공신으로 여겨졌다. 3철은 문 대통령의 당선 이후 줄곧 청와대와 거리를 유지해 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 의원이 이미 경기지사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양 전 비서관은 여전히 현실정치와 계속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이다. 양 전 비서관은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 집필한 원고를 엮어 최근 책으로 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채워야 할 생활 속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 족할 따름"이라는 양 전 비서관의 표현처럼 '언어 민주주의'에 충실한 책이다.

그러나 페이지 곳곳에는 문 대통령을 향한 애정 또한 뚝뚝 묻어난다. 최측근의 눈에 비친 문 대통령은 어떤 모습일지 양 전 비서관의 저서를 통해 살펴본다.

▲가난의 경험이 '정치인 문재인'의 자산

문재인 대통령의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사진=문재인 대통령 블로그]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영도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정치인 문재인'에게 큰 자산이 된다. 당시의 경험 덕분에 문 대통령이 스스럼 없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양정철 전 비서관은 생각했다.

선거 유세 중에 시장을 방문한 문 대통령이 생선을 파는 한 할머니에게 악수를 청한다. 할머니는 머뭇거린다. 자신의 손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 때문에 망설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유, 이 손이 가장 아름다운 손이죠"라며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명절마다 들어오는 선물을 모두 국회의 청소 노동자들에게 몰래 나눠줬다고 양 전 비서관은 기억했다.

가난의 경험은 문 대통령에게 문제의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추억을 얘기하며 역지사지 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방학 기간 결식아동 급식은 참여정부 때 처음 시행됐다. 그러나 의외로 이용률은 낮았다. 정부 대책에는 아이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던 탓이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에 임명되면서 서울에 왔을 때 겪은 에피소드도 양 전 비서관은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지역 출신 청와대 직원들이 주거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자 "지역 사람들은 상당히 억울할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 출신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을 경우 관사나 집을 제공하는데, 반대로 지방 출신이 서울로 발령받을 경우 아무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

양 전 비서관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인생의 반을 서울에서 살고 반을 수도권에서 살았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눈뜨기 전까지는 지방 차별을 정서적으로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면서 "노무현, 문재인 두 대통령 곁에서 당신들이 겪었던 생생한 지방 차별 실상을 직접 들을 기회가 많았다"고 전했다.

▲"소설가에게 작품 세계 묻는 정치인은 처음"

 

문재인 대통령은 애독가로 알려져 있다. 독서광으로서의 면모가 유감 없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에게 소설 '은교'로 유명한 박범신 작가를 소개한 적이 있다. 술잔이 몇 번 오고가자 문 대통령은 박범신 작가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상업적 경향을 띠던 초기 작품과 달리 후기로 갈수록 사회성이 짙다며 문학적 전환 계기를 묻는가 하면, 문단에서 마이너리티 취급을 받는 배경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자리가 파한 뒤 박 작가는 양 전 비서관에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치인이 내 작품 세계의 흐름, 문단 내부 사정 등을 비교적 정확히 알고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글쓰기 습관도 언뜻 드러난다.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다독에서 생긴 문학적 감수성과, 오랜 변호사 생활을 통해 변론서를 작성하며 몸에 밴 꼼꼼함을 겸비하면서 상당한 문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양 전 비서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민감하고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힐 때는 직접 초안을 잡은 뒤 가까운 참모들에게 조언을 받았다. 18대 대선 당시에는 새벽 2~3시까지 혼자 책상에 앉아 연설문의 조사 하나하나를 성에 찰 때까지 고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의 경우 따로 알라지 않고 직접 메시지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소주 한 잔 합니다. 탈상이어서 한 잔. 벌써 3년이어서 한 잔. 지금도 '친노'라는 말이 풍기는 적의 때문에 한 잔.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두고 낯선 세상 들어가는 두려움에 한 잔. 저에게 거는 기대의 무거움에 한 잔. 그런 일들을 먼저 겪으며 외로웠을 그를 생각하며 한 잔." 2012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을 다녀와서 올린 '음주 트윗'에서도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시끄러운 것은 민폐"

양정철 전 비서관이 바라본 문재인 대통령은 "워낙 차분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하는 습관에다 말수도 적지만, 특히 시끄러운 것은 민폐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문 대통령은 기존의 정치 문화에도 비판적이었다. "소리를 크게 질러 연설하는 것, 정치인들만의 말잔치 문화가 무슨 공감이 있으며 우리 정치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지 회의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정치인 팬덤 현상의 수혜자 중 하나이지만, 문 대통령은 이 같은 현상 또한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은 듯 하다.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도 온라인 토론과 댓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데 고민이 깊었다"고 전했다.

양 전 비서관은 "나는 개인적으로 '패권'이라는 말이 '3철'이라는 말만큼이나 지긋지긋하다"면서도 "강력한 결집력을 지닌 온라인 지지자들"을 향해 "미안한 얘기지만, 한 편으로 큰 부담이었다"고 언급했다. 강성 지지자들의 공격적인 온라인 활동이 '친문 패권주의' 프레임의 빌미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 전 비서관은 "많은 이들은 온라인 지지자들의 강력한 비판 댓글이 문재인 캠프와 연계된 조직적인 것으로 오해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지지자들에게 '선플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정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향한 뜨거운 지지는 경쟁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보다 지지 후보를 향한 포지티브로 표현해야 한다. 배타와 배제의 논리, 타도와 공격의 언어는 진보의 정신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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