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법률 사무를 담당하는 율정사(律政司)의 새로운 수장과 관련된 구설수가 홍콩 정가에 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지난 5일 쳉웩와(鄭若驊) 수석변호사가 중국 국무원(國務院)으로부터 신임 율정사장(律政司長, 한국 법무부 장관에 해당)으로 공식 임명을 받았다.
쳉 신임 율정사장은 홍콩 관가에서 ‘공직의 여왕(公職女王)’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엘리트 관료다.
지난 1986년 영국 런던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쳉 율정사장은 홍콩 고등법원 특임판사, 홍콩국제중재센터(香港國際仲裁中心) 소장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영국 공인중재인협회 회장에 선출됐다.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5일 율정사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쳉 신임 율정사장은 풍부한 국재 중재 및 조정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정부 위원회에 참여한 경력도 있어 정부 업무에 대한 이해도 역시 뛰어나다”고 인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날 쳉 율정사장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홍콩 언론들은 그녀의 자택이 불법 개조를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쳉 사장의 자택은 홍콩의 외곽인 다이람(大欖) 해변에 있는 3층짜리 호화 빌라로, 그녀는 지난 2008년 2600만 홍콩달러(약 35억5000만원)을 주고 이 건물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자택의 외부 차고, 옥상 건축물, 정원 내 수영장 등이 홍콩 건축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쳉 신임 율정사장이 변호사 자격증 외에 건축기사(工程師)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는 ‘쳉 사장이 관련 법률을 알면서도 고의로 위반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독신인 것으로 알려졌던 그녀가 바로 옆 건물에 사는 푼록토(潘樂陶) 전 건축기사학회 회장과 지난 2016년 12월 혼인신고를 한 사실도 알려졌다.
혼인신고 시 주례로 렁오이시(梁愛詩) 전 율정사 사장, 찬판(陳帆) 현 운수주택국(運輸及房屋局, 한국 국토교통부에 해당) 국장이 신랑 측 증인으로 참석한 것이 언론 취재 결과 확인되면서 그녀와 홍콩의 관료 사회를 둘러싼 ‘검은 네트워크’와 관련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홍콩의 매체 일각에서는 쳉 신임 율정사장이 캐리 람 행정장관의 강력한 신임을 얻고 있으며, 윈궉켕(袁國強) 전 정무사장이 지난해 7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도 6개월간 연임을 한 이유가 쳉 사장에게 불법건축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쳉웩와 율정사장은 최근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주택은 구입 당시부터 이미 지금과 같이 개조된 상태였으며, 구입 이후 어떠한 증·개축도 하지 않았다. 또한 업무가 너무 바빠 (불법 개축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파 의원들은 쳉 율정사장의 해명이 너무 ‘어리숙하다’고 지적하며 “이 정도의 정무적 감각으로 민감한 업무를 수없이 담당해야 하는 율정사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쳉 사장의 자질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아직까지 쳉 율정사장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람 장관은 지난 11일 쳉 율정사장과 함께 입법회(立法會, 한국의 국회에 해당)에 출석해 “쳉 율정사장이 불법 개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입법회와 시민들이) 관용을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고 쳉 율정사장을 두둔했다.
친중(親中) 건제파(建制派) 의원들 역시 “불법 증개축은 교외 지역인 신제(新界)에서 관행처럼 있어 왔다”며 쳉 율정사장에 대한 반대파들의 비판이 도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여론은 매우 차갑다. 홍콩의 대다수 신문들은 사설에서 “쳉 율정사장이 직접 불법 건축을 했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률 수호와 집행을 담당하는 율정사의 수장으로서 시민들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이 문제”라며 본질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현재 홍콩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지양검(一地兩檢, 홍콩 고속철 웨스트카우룬역 일부 구역에 중국법을 적용하도록 한 것)’ 문제를 최대한 빨리 매듭짓기 위해 관료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고 대내외적으로 추진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쳉웩와를 율정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신뢰성에 큰 흠집이 나게 돼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일지양검’을 둘러싸고 새해 벽두부터 1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가두시위가 벌어졌고, 3월로 예정된 입법회 보궐선거에서 민주파가 자체 경선을 실시해 후보 단일화를 꾀하는 등 친중 건제파와의 대결에서 배수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파문은 홍콩 정부와 건제파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