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화랑④]원광법사 세속오계는 화랑정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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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T&P 대표
입력 2018-01-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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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승려가 유학 가치관 담아 화랑도의 선(仙)과 함께 유불선 융합

# 불교 지식인에게, 한 수 배움을 구한 화랑들

600년(진평왕 22년). 청도 운문사의 가슬사(嘉瑟寺)에 두 청년이 찾아와 스님을 찾았다.

“진나라와 수나라에서 유학을 하시고 돌아오신 원광법사를 뵙고 싶습니다.”

얼굴이 어리면서도 미색(美色)이 감도는 귀공자들이었다.

“어찌 하여 그러시오? 스님은 출타 중이신데...”

“서라벌 사량부(선도산 동쪽)에 살고 있는 귀산과 취항이라고 합니다. 고승을 뵙고 큰 가르침을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오늘 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절에 머무르면서 법사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울산 쪽으로 가서 강연을 하고 돌아온 원광은, 붉은 옷을 화사히 차려입은 두 사람을 반색하며 맞았다.

“불가(佛家)에서 아직 헤매고 있는 소승을 어찌하여 찾으셨는지요?”
 

[사진 = KBS드라마 '화랑'의 한 장면.]




# 유교-불교-화랑도, 세 학문을 통합한 지식을 알고싶나이다 

“듣자 하니 법사께서는 중국에서 유불선을 두루 섭렵하셨고 삼교회통(三敎會通, 세 학문의 가르침이 합쳐져 서로 통함) 운동을 펼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라의 풍류도야 말로 삼교를 모두 포용하는 깊은 철리(哲理)가 아닐까 합니다. 저희를 위해 삼교회통의 핵심을 요약해주십시오.”

“허허. 예. 불교에서는 보살10계라는 것이 있는데 대중이 지키기에는 조금 어렵습니다. 낭도들께서 굳이 제게 청하시니, 세속에서 지키면 신라가 불국정토로 거듭날 수 있는 다섯 계율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귀산과 취향의 눈빛이 반짝였다.

“소승은 옛날 삼기산 금곡산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산신이 나타나 중국으로 깨달음을 찾아 나아가라고 권하였습니다. 풍류도의 화현(化現)인 산신이, 승려인 제게 불교 유학을 권면한 것은 풍류도가 이미 불교를 모두 품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불교의 경계에 묶이지 않고 우리 낭도들이 지녀야할 ‘세속5계’를 드리고자 합니다.”

# 충성과 효도와 신의, 전쟁의 용맹까지...유교적 가치를 말한 스님

제1계 사군이충(事君以忠: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
제2계 사친이효(事親以孝: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
제3계 교우이신(交友以信:믿음으로써 벗을 사귄다)
제4계 임전무퇴(臨戰無退: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
제5계 살생유택(殺生有擇: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다)

맹자 5륜과는 어떻게 다를까.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 朋友有信(붕우유신). 5륜 중에서 충, 효, 신을 담고 있다. 불교도 원광이 유학적인 가치관을 이토록 파격적으로 포용한 것은 놀랍다.

5륜을 3계로 채택한 원광은 그러나, 맹자가 말한 친(親)이나 (義)같은 상호 존중의 의미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모시는 적극적인 권유로 바꿔놓았다. 왕에겐 충성하고 부모에겐 효도하라. 이것은 풍류도에서 말하는 상하(上下)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존중한 것이다.

친구끼리의 신(信)은 그대로 따랐다. 화랑도의 친교를 의식했을 것이다. 화랑도가 수련을 자주 갔던 금강산 일대의 통천 지역에는 금란산, 금란굴 등 금란(金蘭)이라는 지명이 많다. 금란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金)라도 능히 끊을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蘭)와 같다. 소년들은 말과 마음이 통하는 벗을 생각하며 곳곳마다 ‘금란’을 새겼다. 교우이신의 열광은 그렇게 자취로 남아있는 셈이다.

# 부부유별과 장유유서는 빼고, 임전무퇴를 넣다

원광법사는 부부와 장유(長幼)의 윤리는 빼고, 대신 무(武)의 문제를 넣어놓았다. 이것은 화랑도가 당면하는 전쟁이란 문제에 대해 지침을 만들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임전무퇴는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에 대한 예찬으로, 호국불교를 지향한(원광은 고구려를 치기 위해 수나라에 걸사표(乞師表)를 지어바치기도 했다) 그의 신념을 볼 수 있다. 화랑의 수많은 무용담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지푸라기같이 버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확고한 사생관은 신라를 한반도 최강의 정치시스템으로 올려놓은 무서운 전력(戰力)이 된다. 그러나 법사는 필요한 살육은 허용하였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살생유택으로 달아놓았다. 제5계야 말로 불교적인 계율일 것이다.

# 불교적인 계율은 살생유택 뿐

봄과 여름에는 살생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그땐 만물이 소생, 번식하는 계절에는 죽여서 안된다는 뜻이다. 여섯 재일(齋日)(8, 14, 15, 23, 29, 30일)엔 죽여선 안된다. 근신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또 부리는 가축은 죽여선 안되며 고기가 한점도 안되는 작은 생물을 죽여서도 안된다. 생명의 질서와 자연섭리를 거스르는 잔혹한 살육은 허용하지 않았다.

살생유택은 오늘날 친환경 정신과 닮아있다. 맹자는 4촌(寸) 이상의 그물눈을 사용하게 하여 작은 고기를 잡지 못하게 했고, 한 자가 안되는 물고기는 시장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초목의 잎이 말라 떨어진 뒤에야 도끼를 들고 입산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런 태도는 자연과 생명에 대해 겸허하고 신중한 태도를 지녔던 옛사람들의 지혜였다. 이상국 아주T&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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