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가지 아름다운 행위, 3미행(三美行)
김응렴은 18세때 풍월주가 되었다. 헌안대왕이 그를 불러 잔치를 베풀고 물었다. “국선(國仙)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녔으니 별난 것도 많이 보았으리라. 내게 말해줄 것이 있느냐?”
응렴은 대답했다. “별난 것이라면 참 아름답게도 별난 짓을 하는 세 사람을 보았습니다.”
“예. 남의 윗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인데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첫째였고, 부자이면서도 옷차림이 검소한 사람이 있으니 그 둘째였고, 부귀와 권세가 있는데도 위력을 부리지 않는 이가 있으니 그 셋째였습니다.”
응렴의 이 말은 헌안의 치세(治世)가 왕국의 절정을 지나 쇠퇴에 이르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세상에 겸손, 검소, 소탈한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이 별난 사람이 될 정도로 말이다. 3미행자(美行者)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화랑도는 평화기에 나타나는 사치와 패악에 대해 경고하고 그 중심을 다시 잡는 균형추가 되고자 했을 것이다.
# 어느 공주와 결혼을 하겠소?
헌안대왕은 저 말에 크게 감명을 받고 공주와 결혼할 것을 허용했다. 그런데 공주는 두 명이었다. 못생긴 첫딸과 결혼할 것이냐, 아니면 예쁜 둘째딸과 혼인할 것이냐를 놓고 김응렴의 집안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때 화랑의 상수(上首, 자문역)로 있던 승려 범교(範敎)가 말했다. “첫째 공주와 결혼하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첫째 공주와 결혼을 마쳤을 때 헌안대왕이 갑자기 승하하고 그가 왕위에 오르니 경문대왕이다. 세 가지 좋은 일은, 왕위에 오른 것이 첫째이며, 두번째 공주까지 취할 수 있는 것이 둘째이며, 선왕이신 경문대왕이 기뻐한 것이 그 셋째였다. 경문왕의 이 스토리는 욕심을 절제하는 지혜에 관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드라마틱하다. 그는 화랑 시절에 보았던 ‘낮춤’의 지혜를 활용하여 결국 왕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 문화지식인으로 성숙한 화랑, 나라의 쇠미를 알아차리다
김응렴이 화랑으로 활동하던 시기는 860년대경이다. 삼미행에서 우리는 난숙한 신라 화랑도가 지향했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활력과 긴장이 사라진 이 시기에는 살신성인과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무인 화랑보다는 유오산수(遊娛山水)와 가악상열(歌樂上悅)의 문화인 화랑이 자리를 잡고있었다.
풍류라는 개념이 오늘날 유람과 유희에 가까워지게 된 것은, 화랑도의 역할이 달라지면서부터일 가능성이 있다. 하늘과 소통하며 국가를 책임지는 존재였던 그들은, 이제 고급 문화 엘리트로써 삶을 향유하고 예술을 누리는 집단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사회의 내밀한 통증을 찾아내서 바로잡고 치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 저 삼미행에 숨어있는 뜻이다. 삼미행은 명예, 부, 권력의 욕망을 자제할 것을 권장한다. 신라의 쇠미 증상을 알아차린 것도 화랑이었다. 말기의 병폐를 발견하고 왕에게 보고하는 그들은, 끝까지 신라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지식전사(戰士)였다. 이상국 아주T&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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