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궁궐에서 쫓겨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21세의 미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옛집에서 쓸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16세의 사다함은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청아하면서도 슬픈 노랫소리를 들었다.
“세상의 부귀는 한때일 뿐이네.
떠들썩한 사랑도 한때일 뿐이네.
하늘을 친히 모시던 몸이
하루아침에 버림받고 깃털 빠진 새.”
사다함은 절망에 빠진 여인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는 다가가 말을 건넸다. 멋진 화랑 앞에 선 그녀는 몇 마디 따뜻한 배려의 말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부부가 되기로 언약한다.
561년(진흥왕 23년) 9월. 신라가 대가야와 격돌하는 전쟁이 일어났다. 화랑은 조국을 위한 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사다함은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종군했다. 출병하는 사다함을 위해 미실은 노래를 부른다.
“바람아 불더라도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아 치더라도 임 앞에 치지 마라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사다함은 1천 낭도들을 이끌고 국경에 이르렀다. 장수인 이사부에게 기병 5천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대담무쌍하게도 정공법을 써서, 대가야군 성문이 있는 전단량(고령지역)으로 바로 쳐들어갔다. 적은 크게 놀라 방어할 태세도 갖추지 못했다. 사다함 기병이 뚫고 들어갈 때 뒤에서 이사부 대군이 몰려들어 대가야군을 무너뜨렸다.
16세의 아름다운 남자가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려 대가야군이 버티고 있는 성문 앞에 들이닥치는 이 장면은 화랑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대담한 병술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설마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적군은 사다함이라는 어린 전사에게 운명을 내줬어야 했다.
전승을 거둔 공로를 인정하여 왕은 사다함에게 가야인 300명을 주었다. 그런데 그는 이들을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풀어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이번엔 땅을 하사하려 했는데 그는 한사코 사양한다.
그래도 왕의 뜻인데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강권하니, 알천의 불모지를 달라고 했다. 적국의 백성일망정 함부로 하지 않고 아끼는 어진 풍모와 물질적인 이익 앞에 무욕의 태도를 보여준 화랑. 사람들은 공자의 인(仁), 노자와 석가의 무위(無爲)와 공(空)을 실천한 당대의 진정한 풍류남이라고 입을 모아 칭송했다.
그러나 그가 거듭 고개를 흔든 것은 남 모를 실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미실은 이미 궁궐로 다시 불려 들어가 세종전군의 짝이 되어 있었다.
알천의 불모지를 달라고한 뜻은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짝 잃은 화랑은 눈물을 흘리며 <청조가(靑鳥歌)>를 불렀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물렀나
파랑새야 파랑새야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 구름 위로 가버리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나 말지 또 갈 것을 왜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고 마음 상해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神兵)이 되리
너에게 날아들어 보호하는 호신 되어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군 부부 호위하여
만년 천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라”
이후 사다함은 친구 무관랑의 죽음을 겪는다. 혼인을 약속한 미실을 잃은 상심에 친구까지 잃었으니 세상에 끝난 것 같았을까. 몹시 애통해하다가 그 또한 7일만에 죽고 만다. 사다함의 용맹과 사랑과 우정과 절망. 화랑이 걸어간 피와 눈물의 길이었다. 사다함 스토리는 신라를 떠도는 아름다운 파랑새이다.(이 스토리는 사다함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상국 아주T&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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