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8일 오전 11시 55분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마치고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기자회견장 연단에 7명의 인물이 서열 순으로 입장했다. 맨 마지막인 일곱 번째로 등장한 인물이 한정이었다. 당시 ‘포스트 시진핑’으로 떠올랐던 후춘화(胡春華)와 천민얼(陳敏爾)을 제치고 한정이 상무위원 7인에 포함된 것을 두고 의외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그건 한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중국의 경제수도라 할 수 있는 상하이에서만 공직생활을 26년 넘게 했다. 상하이 시장을 10년, 상하이 서기를 6년 지냈다. 특히 그는 49세 젊은 나이에 상하이의 가장 젊은 시장으로 발탁됐다. 지난 16년간 상하이의 발전은 한정이 총지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정은 상하이에서 시장 개방과 개혁을 밀어붙이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가 상하이 시장, 서기로 재임할 당시 2010년 상하이 국제엑스포의 성공적 개최, 2013년 중국 최초의 자유무역시험구 상하이 출범, 2016년 상하이 디즈니랜드 개장 등 굵직한 성과도 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측근 보좌하며 중국의 경제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나 슝안신구(雄安新區) 등과 같은 프로젝트를 실제 집행할 상무부총리에 제격이라는 평이 나온다.
게다가 한정은 중국 정계 각 계파와도 두루 인연을 맺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정치 경력의 전부를 상하이에서 보낸 만큼 자연스럽게 ‘상하이방’에 속한다. 동시에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상하이시 위원회 부서기, 서기를 잇달아 맡으며 리 총리 계열의 공청단과도 인연이 있다. 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07년 상하이 서기로 8개월 짧게 재임할 당시 상하이 시장으로 함께 손발을 맞췄다. 어느 한 군데 속하지 않은 엷은 계파색은 그가 상무위원으로 오르는 데 장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4년 12월 31일 밤 상하이 와이탄에서 열린 새해 맞이 행사에서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며 36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해 사퇴 여론 압박에 몰리기도 했다. 이듬해 3월 열린 양회에서 그는 “매우 엄중한 결과를 초래한 이 사고가 도시 관리자에게 어떤 경우라도 안전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렸다”며 거듭 고개 숙여 사죄하기도 했다.
한정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상하이에는 임시정부 청사가 소재해 있는 데다가 한국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만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등 우리나라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교류해왔다. 한정은 지난 2012년 상하이 시장 재임시절 상하이 대표단을 이끌고 여수 국제박람회를 참관하고, 상하이 자매결연 도시인 부산도 방문한 바 있다.
◆ 한정 상무위원,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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