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1위, SK하이닉스는 3위를 차지했다"면서도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강도높게 지적했다. 최근 한국공학한림원이 주최한 'CEO 조찬집담회'에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 동향과 SK하이닉스의 대응’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서다.
지난해 반도체 슈퍼 사이클(초장기 호황)에 힘입어 국내 반도체 업계는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하는 등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국의 맹추격 등으로 SK하이닉스를 비롯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녹록치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 '반도체 코리아' 매출 100조 신화 썼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쾌속질주했다. 시장조사회사 가트너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반도체 매출은 전년 대비 53% 성장한 612억 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24년만에 인텔(577억 달러)을 제친 것이다.
SK하이닉스도 2016년보다 79% 증가한 283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미국 퀄컴을 누르고 처음으로 3위에 올랐다. 이로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한해 100조원의 매출을 달성, ‘반도체 코리아’의 위용을 뽐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업체 주도의 반도체 공급과잉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15년 중국은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64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겠다며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바 있다.
박 부회장은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경우 2013년까지 30년간 투자한 금액이 약 60조원인데 반해 중국은 5년 사이 120조원을 투자했다”고 전했다.
1990년대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반도체 산업의 주를 이룬 일본 기업들은 지속적인 투자를 하지 못했다"며 "시장 변화에 유연하고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 SK하이닉스, 선제적 투자 통해 '초격차' 굳히기
SK하이닉스는 미국, 중국 등의 견제가 심해지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선제적 투자에 나설 방침이다.
박 부회장은 “중국 업체들과 비교해 4~5세대 이상의 기술격차를 나타내고 있다”며 “기술 격차를 더 벌리기 위해 차세대 제품에 대한 기술을 계속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SK하이닉스와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격차는 현격하다. 중국은 D램의 경우 20나노 초반대, 낸드의 경우 30단 개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D램의 경우 10나노 중반대, 낸드는 90단 이상을 개발한 상태다.
반도체 초(超)격차를 굳히기 위해 올해 SK하이닉스는 전년 설비투자 규모(10조3000억원)를 뛰어넘는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제조 부문의 ‘딥 체인지(근본적 혁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또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비메모리 분야인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는 “제조 인프라에서 새로운 기술과 제조 시스템의 융합과 같은 근본적인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며 “제조 공정이 복잡해짐에 따라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업무속도 향상 및 정확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박 부회장은 “SK하이닉스는 순수 메모리 업체로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글로벌 ICT 업체들과 긴밀한 파트너십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성능‧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해 보다 좋은 위치에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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