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얼굴’이자 '대통령의 입'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주요 국정활동을 언론과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누구보다 잘 공유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기획력과 정무적 감각을 갖춰야 하고, 언론사·기자들과의 스킨십도 두터워야 한다.
그래서인지 역대 정부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는 대통령의 복심인 최측근 인사나 ‘언론의 메커니즘과 기자들의 문법을 속속들이 잘 아는’ 언론인 출신이 기용됐다.
과거 청와대 대변인들을 돌이켜보면 대변인에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에 따라 정권에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했다.
◆노무현정부 ‘386참모들’이 대통령 ‘입’으로 전면에 나서
역대 정부에서는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이 공보수석을 맡으면서 대변인을 겸임하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오랜 동지이자 참모들이 대통령의 ‘입’으로 활약했다. 윤태영, 김종민, 김만수, 정태호, 윤승용, 천호선 대변인이 차례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는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참모들이 정부 정책과 입장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임기 4년 동안 대변인을 8차례나 교체했다.
노 대통령이 워낙 꼼꼼한데다 임기 내내 보수 주류언론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탓에 대변인의 피로감이나 업무 강도는 무척 셌다.
게다가 매일 오후 1시에는 홍보수석과 대변인이 기자들을 상대로 국정 현안 일일 브리핑을 진행했다. 이 브리핑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까지 고스란히 KTV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훗날 천호선 홍보수석겸 대변인은 가장 힘들었던 브리핑으로 ‘김선일 사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23명 피랍사건’을 들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기자들의 송곳 질문에 진땀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협상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그의 말 한마디는 피랍 한국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김대중정부 시절 사상 최초 여성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박선숙 대변인의 맥을 이어 노무현정부 초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송경희(KBS 출신) 대변인은 잦은 말실수로 3개월 만에 경질됐다. 발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워치콘과 데프콘의 용어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브리핑을 하다 그만 ‘사고’를 친 것이다. 북한은 이를 트집잡아 남북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MB정부 이동관 대변인, 현안 고비마다 대통령 발언 ‘마사지’ 논란
이명박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으로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동관씨를 비롯해 김은혜(MBC 기자 출신), 박선규(KBS 기자 출신) 대변인이 꼽힌다.
이동관 대변인은 일찌감치 대선 때부터 이명박캠프에 들어가 공보분야에서 맹활약을 하며 대선 승리를 도운 핵심 일등공신이다. 대변인을 거쳐 홍보수석 자리까지 꿰찼다.
이 대변인은 임기 내내 갖은 언론 외압 의혹도 모자라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해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짜 맞추는 이른 바 ‘마사지’ 논란에 휩싸였다. 오죽하면 무엇이든 주무른다고 해서 마사지 전문가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이를 두고 언론을 장악하고 길들이고, 그럼으로써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후진적 언론관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친보수성향 문화일보조차도 “불편한 진실을 잠깐 감추면 편할지 모르나 결국 ‘양치기 소년’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찌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칼럼을 내놓을 정도였다.
이 대변인은 정권 초기 본인의 투기 의혹 기사삭제 압력에서 시작해 봉은사 기자회견 외압 사건에 이르기까지 구설수에 올랐고, 이명박 대통령의 G20 유치 특별기자회견 당시 기자들에게 ‘세종시’ 관련 질문은 하지 말라고 사전에 ‘마사지’하기도 했다.
홍보수석을 맡은 후에도 마사지 논란은 계속됐다.
주부모니터단 출범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들도 정신차려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이 수석은 제멋대로 ‘마사지’해서 “책임지고 가르쳐야 한다”로 바꿔 버렸다.
이 수석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일본 하토야마 총리가 “만약 일본이 같은 방식의 공격을 받았다면 한국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보도자료까지 내놓았는데, 일본 정부가 발끈하고 나서자 곧바로 사과까지 해야 했다.
또 이 대통령이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연내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 같다고 발언했는데, 청와대는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축소·왜곡했다.
이 수석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마치 지금 뭔가 진행돼 곧 될 것 같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조금 ‘마사지’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일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은혜 대변인이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朴정부 '불통' 상징인 윤창중, 美 방문중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 일으켜 전격 경질
박근혜정부는 청와대 초대 대변인으로 남녀 대변인을 기용, 대변인실을 투톱 체제로 운영했다. 대선 기간 동안 보수논객으로 활약해온 세계일보 출신 윤창중 대변인과 중앙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출신 김행 대변인이다.
박근혜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에서 청와대 초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겨 ‘위인설관’ 논란을 빚었던 윤창중 대변인은 어이없게도 미국 방문중 주미대사관 인턴여직원 성추행 의혹으로 국가 명예를 실추시키며 3개월 만에 전격 경질됐다.
당시 청와대는 박 대통령 방미 도중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라는 메가톤급 사건을 36시간가량 쉬쉬하고 윤 대변인을 먼저 귀국시켰는데,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뒤늦게 윤 대변인의 경질을 발표해 은폐 의혹을 받았다.
인수위 대변인 때부터 ‘밀봉 대변인'이라는 명성을 얻은 윤 대변인은 임명 후 3개월 동안 줄곧 기자들로부터 부실한 브리핑과 불통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뒤를 이은 민경욱 대변인은 KBS 앵커 출신이라는 대중적 인지도에 힘입어 청와대에 입성했다. 내정 발표날 오전까지 회사 부서회의에 참석해 부적절한 '폴리널리스트' 처신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임기 내내 기자들과 스킨십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노력형' 대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민 대변인 역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부적절한 언행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민 대변인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은 데 대해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팔걸이의자 때문에, 또 그게 사진 찍히고 국민 정서상 문제가 돼서 그런 것"이라고 서 장관의 행동을 두둔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민 대변인은 "비보도 전제 발언이었다"고 기자단에 엠바고 징계를 요청했고, '라면 계란' 발언을 보도한 한겨레 등 일부 매체는 기자실 출입정지 28일(4주) 징계를 받았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신임 대변인에 언론인 출신 발탁··· '폴리널리스트' 논란
문재인 대통령은 6·13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후임에 김의겸 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를 발탁했다.
김 내정자는 2016~2017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특종 보도한 진보성향 매체의 중견 언론인 출신이다. 지난해 5월 청와대 초대 대변인으로 거론되고서 2달 후인 7월 한겨레에서 퇴직했다.
당장 야권에서는 ‘코드인사’, ‘보은인사’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언론사 현직 기자가 청와대·정부 대변인으로 직행하는 '폴리널리스트'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원칙적인 비판도 나온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까지 기자 옷 입고 권력에 질문하던 자가 오늘 옷을 바꿔 입고 권력의 편에서 답변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한국 언론의 정파성을 강화하고 언론직의 기회주의를 조장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그동안 권언유착을 통해 이뤄진 언론에 대한 통제가 더 큰 문제이지, 개인의 선택은 존중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소통의 대변인'으로 박수를 받을지, '영혼없는 앵무새 대변인'이라는 오명을 안을지는 이제 그의 몫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