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25시] 문 대통령 공무원 길들이기…‘복지부동’ 쉽게 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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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기자
입력 2018-01-3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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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 들어 3번째…장‧차관 워크숍에서 ‘혁신’ 강조

  • 공직사회 “소나기 피하자”…눈치 보기 급급

[사진=청와대]

“혁신의 가장 큰 적은 과거에 해왔던 방식, 또는 선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공직사회는 과거에 해왔던 방식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장‧차관 워크숍에서 내각을 겨냥한 작심 발언이다. 이 발언 직후 공직사회는 바짝 얼어붙었다. 혁신의 칼끝이 잘못하면 공직사회로 선회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변화에 무딘 공직사회를 바꾸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는 올해 중순부터 감지됐었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부처간 엇박자에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고, 25일 주재한 청년일자리 점검회의에서도 일자리 정책에 정부 의지가 부족하다며 질책했다.

대통령이 직접 공직사회의 변화를 요구하자 관가는 숨죽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다만, 공직사회에 만연한 ‘복지부동’의 관례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공직사회는 철저하게 수직적 집단이다. 민간 기업들은 10여 년 전부터 수평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며 기업문화가 변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은 여전히 상하 관계가 뚜렷하다. 이 때문에 장‧차관 입김이 절대적이고 실‧국장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다.

이런 경직된 조직에서 혁신 아이템이 나오기는 어렵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 정책들을 모아 발표하는 경제정책방향만 보더라도 대통령과 청와대 입맛에 맞춘 정책이 부지기수다. 윗선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철칙이 있는 셈이다.

최근 문 대통령 작심발언을 놓고도 공직사회 의견이 분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격탄을 맞은 당사자인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은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성과를 내기 위해 영업사원 못지않게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일자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다른 부처들은 어쩐지 느긋한 모습이다. 이 또한 한바탕 ‘소나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통령이 공무원을 지목해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쓴 소리를 했는데 오랜 공무원 습성을 버리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관가에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풍파에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복지부동’을 꼽는다. 절대복종만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공직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일반 국민은 한심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번 바뀌는 정권과 장관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좋다. 대한민국 공직사회가 수십년간 시행착오를 겪어 구축한 철옹성이다. 갈수록 좁아지는 승진의 문턱에서 생존하는데 자신의 의견은 필요 없다. 오로지 윗선이 어떤 것을 요구하느냐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 작심발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질책을 했으니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확 바꾸지는 않는다. 이게 공직사회다. 문 정부의 일부 부처 장관들은 지금까지 잘하던 실‧국장급을 과감하게 내치고 있다. 대부분 부하 직원에게 신망은 있으나 윗선에 쓴 소리하는 사람들이다.

장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방청 등으로 인사조치 해버린다. 본청에서 발을 붙이기 힘들다. 사무관들은 과장과 국장들 처세술을 배우지 않으면 다음 승진길이 막혀버린다.

정부부처 한 공무원은 “대통령이 직접 공무원 기강을 문제 삼았다면 당분간 숨죽이고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공직사회 전반의 수직적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공무원 혁신은 쉽지 않다. 정부의 윗선은 항상 바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직사회를 민간 기업과 똑같이 바라보는 시선들도 부담스럽다. 민간 기업은 오너가 바뀌지 않는다. 몇 십년을 자신의 의지와 경영철학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수시로 바뀌는 기조를 따라가려면 내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만년 과장 꼬리표를 탈출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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