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마음의 불(心火)을 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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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입력 2018-02-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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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朝行妄作腑腸頭 아침에 길 가다 헛된 맘 일어서
生惱生嗔苦沒有 괴롭고 성나니 참으로 이유 없다
(중략)
玉瀣金津都表制 옥해와 금진 모두 약이 된다는데
良醫合向自家求 좋은 의사란 자신에서 구하는 것
- 이정섭(李廷燮), 〈마음의 불(心火)〉
 
한 번쯤 괴로움에 뒤척이며 밤을 지새워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화내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화를 내는’ 그 경험에 있어서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어느 과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에서 ‘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불공평 혹은 불공정한 대우라고 한다.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셈인데, 나의 기대치와 저들의 시선을 투과한 내 모습 사이의 낙차가 클수록 화의 농도는 짙어진다. 박노해 시인 또한 ‘네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네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조선 후기 종실 출신인 저촌(樗村) 이정섭. 어느 날 아침 그에게 이유 없는 우울함이 덕지덕지 따라붙는다. 그는 이를 두고 ‘마음의 불(心火)’이라 하였다. 처음엔 그 ‘이유 없음(沒有)’에 답답했지만 이내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의 화를 대면하기 시작한다. 불길 속에 있으면 불을 끌 수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이유가 없다는 것’은 그럴 듯한 핑계일 뿐, 미숙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일부분을 인정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불씨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는 탓할 대상을 찾아 화를 풀기보다 자신을 객관화하며 치유의 방법을 찾았다. 좋은 의사(良醫)란 결국 자신 안에 있다. 그러나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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