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하면 공기업이나 재벌들에까지 이르는 취업 특혜들에서 좌우를 떠나 이것은 정말 아니라는 즉, 공정한 기회의 박탈이라는 현실적 가치의 무게감이 이사회에 대한 허무도 느끼게 한다. 기회의 평등! 결과의 평등! 흔히 우파와 좌파를 이런 것에서 구분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준공무원자리에 응시했다가 면접관이라고 앉은 사람들의 면면! 특히 면접관으로 회피하여야할 자들이 뻐젓이 앉아있고,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면접관 자리에 있었나본데, 회피를 요구하여 탈락시키고 인원이 모자라니 면접관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실무과장이 들어가 나를 탈락시킨 일로 많이도 힘든 적이 있다.
국가권익위원회 친구에게 전화하니 고발하면 당장 혼내겠다고 하였지만, 이 사회는 “다 정해놓고 하는 자리에 철없이 시험을 봤느냐”는 냉소 섞인 반응으로 나는 또 한 번 어리석은 놈이 되고만 일이 있다.
기회의 평등이란 누구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경쟁을 할 수 있음이며, 그 결과까지 평등해지길 바랄 수 없다는 우파적 시각으로 보는 경우를 말한다하고, 결과의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의 중요성에 부가하여 결과까지 평등해져야 된다는 즉, 이미 주어진 여건이 기회의 평등을 주지 않음으로 해서 혹은 다른 이유에 의해서든지 결과의 평등까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음의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라도 결과까지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들을 한다.
어찌보면 기회의 평등 중 가장 신분상승이 기회가 좋다고 여겨지던 사법고시제도도 어느 순간 엄청난 스펙이 요구되어 그 스펙을 쌓기에 필요한 실탄(?) 문제로 인하여 흙수저가 근접할 수 없는 명분만의 제도로 전락하여 결국은 지난해 폐지되었지만, 그의 대체로 마련된 로스쿨제도도 이와 다를 바가 없고 결국은 금수저가 아니면 도전이 힘든 문제가 발생하였다. 사시가 결과의 하향 평등을 가져 온 것은 아닌지도 살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과 함께 결과의 평등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그것 모두를 독식하려는 오류를 항상 범한다.
과거에 우리들은 노력하면 이룰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다. 이른바 금수저인 상전이라 할지라도 노력을 게을리 하면 대열에서 이탈하고, 흙수저인 하인의 자녀들도 공부 잘하고 성실하면 상전이 성공할 기회도 부여해주었으며, 흙수저와 금수저의 기회가 그리 많이 차이 나지 않아 기회라는 것은 마음먹으면 가질 수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
기회의 평등은 아무나 공평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가고자 하는 직능에 맞는 스펙을 갖춘 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으로서 합리적인 차별이 될 것이다.
즉 일자리에 맞는 노력을 한자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어 불만을 줄일 수 있고, 그것이 동기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각 개인의 만족도를 높임과 동시에 사회 전체와 공동체 모두의 발전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우선하는 사회 보장 제도(사회 안전망 구축)가 이러한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고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공무원, 이를 조종하는 권력자들에 의하여 어느 한구석에서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것이 많은 정부인가 적은 정부인가가 관건이지 없지는 않는 것 또한 문제이다.
정권 잡는 일만 혈안인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모범적으로 악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이번에야 말로 이러한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구현하고 올바른 과정의 정의를 실현할 인물을 뽑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국민들은 정권과 정치인만 탓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회의 불평등을 조장한 사람들을 정치권에서 과감이 떨쳐낼 인물을 뽑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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