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일본 경제는 완만한 회복기조를 나타냈다. 경기 확장세가 6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과도한 엔고가 수습되면서 일본인들은 장기 불황으로 쌓여온 좌절감과 무기력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이다. 그의 경제 부흥정책인 '아베노믹스'의 공헌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5년을 넘긴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 작년 말 기준 명목 GDP는 550조엔으로 5년 전보다 56조엔이 증가했다. 아베 집권 이후 일본 경제가 벨기에의 GDP 규모만큼이나 늘어난 것. 하지만 경제 성장세는 민간소비보다는 자본지출 확대에 주로 기인한다. 기업들은 여전히 임금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
또, 인구감소와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많은 일본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일본의 GDP 대비 공공부채는 240%로 세계 최악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그리스의 181%보다 심각하다. 아베 정권 들어 공공부채 비율이 줄고는 있지만 인구감소로 인해 1인당 GDP 대비 공공부채는 여전히 증가세다.
이처럼 고용시장이 오히려 일손 부족을 걱정하는 상황이지만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은 지지부진해 아베노믹스의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블룸버그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일본 기업들은 겨우 1% 정도 임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이 정도로는 가계소득 증대와 민간소비의 회복을 기대하긴 힘들다. 기업들은 시장 경쟁력 하락을 우려해 제품가격 인상에 소극적이다.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아베 정권이 내세운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 달성이 어려워 보이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은행이 다른 세계 중앙은행처럼 양적완화 조치의 종식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민간소비와 더불어 저조한 노동생산성 그리고 지지부진한 구조개혁은 아베노믹스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들이다. 일본의 제조업 분야 생산성은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노동인구의 70%가 집중된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2003년에서 2016년 사이 10% 이상 하락했다.
아베노믹스는 대규모 금융 완화, 과감한 재정투입 그리고 구조개혁을 통한 혁신성장 등 ‘3개의 화살’을 축으로 한다. 생산성 저하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 화살인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하면 아베 정부의 성장전략은 공허한 약속에 그칠 것으로 다수의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일본이 최근 수년간 기록한 '화려한' 경기 확장세는 노동시장 유연화, 세제개편 또는 스타트업 육성 등 구조개혁을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에 따른 업적이 결코 아니다. 글로벌 경기회복세와 일본은행의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이 가져온 우연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소프트뱅크의 신화를 쓴 제일교포 3세 손정의 회장의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일본 재계 전반의 모험심과 도전정신은 쇠퇴한 지 오래이다.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무너지고 있다. 도시바와 후지제록스의 분식회계에 이어 고베제강, 닛산자동차 등 일본 제조업 대표 기업에서 품질 데이터 조작 등 각종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기가 호전돼 이윤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의 많은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임금 인상에는 인색하다. 기업 경영구조를 혁신하려는 노력 없이는 일본 경제의 2대 장애물인 저물가와 임금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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