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명절을 맞아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 친지, 친구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도 있다.
4년째 부산에서 살고 있는 북한 새터민 A모씨(여러 사정 상 익명으로 대체)는 "자유를 찾아,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좋은 음식을 차려 놓고도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며 설날 만큼은 북한이 그립다고 한숨을 쏟아낸다.
지난 9일, 북한 양강도 출신으로 탈북한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지역에서 가족같이 지내고 있는 3명의 새터민 여성을 만나, 이들이 전하는 북한 설날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탈북 후, 한국에서 정착한지, 각 각 4년, 5년, 8년이 되었지만, 한국에서 지내는 설날은 늘 그리움으로 눈물을 훔친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은 설날이 되면, 그동안 아껴뒀던 모든 음식을 장만해 풍성이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윷 판도 벌어지고, 오락회(노래자랑), 거리 공연, 등 설날은 정말 즐겁게 논다.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 찾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는다. 정말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설날만 같아라"고 설날 풍경을 말한다.
딸을 만나기 위해 지난 2013년 탈북해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을 거쳐 부산에 정착한 A씨는 "양력설을 쇠고 있다가, 최근 김정은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음력설도 같이 지낸다. 설날도 차례를 지내고, 세배도 하며, 세뱃돈도 주고 받는다. 그날 만큼은 좋은 물을 떠서, 새 술을 담고, 정성을 담아 모든 음식을 내 놓는다"고 말했다.
또, 3자녀 중 2자녀만 데리고, 지난 2011년 탈북, 심양, 북경, 라오스 등을 경유해 부산에 정착한 40대 새터민 여성 B씨는 "양강도는 감자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감자로 만두를 빚고, 돼지고기 국을 끓이고, 임연수어, 명태, 찌짐, 수육, 등 각종 음식을 차려 놓고 풍성하게 먹는다. 특히 떡국 대신 녹말로 만든 국수를 넣은 돼지국수를 즐겨 먹는다"고 북한 설날 음식을 소개했다.
북한에서 불법적인 다양한 일(?)을 하다가, 수감되고, 탈북하고, 다시 북한으로 이송되면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해,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된 C씨는 "먹고 살기 위해 밀수 등 북한에서 법을 어겨가면서 돈을 벌었지만, 어디를 갈 수가 없었다. 세상을 돌아보며, 자유를 찾고 싶어서 막내딸 손잡고 탈출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북한 설날은 설날 아침에 김일성 주석 사진에 제일 먼저 인사를 하고, 설을 보낸다"고 말했다.
C씨는 "(김일성 주석)인사 후 가족끼리 새배한다. 설날 전날에 큰집에 모여 설 준비를 한다. 설날에는 가족들이 음식을 싸서, 친척 집을 돌고, 동네 어르신들한테 인사하러 간다. 쌈지돈을 모아서 세뱃돈도 주고, 받는다. 설날인 만큼 새 옷 또는 깨끗한 옷을 차려 입고, 정갈하게 움직인다. 아침 인사 후, 가족끼리 상품을 걸어 놓고 윷놀이도 하고, 노래자랑도 한다. 또 어르신들이 여장을 해서, 풍악도 울리고, 거리에서 공연도 한다. 정말 하루를 제대로 즐긴다"고 설날의 놀이문화를 웃음과 그리움이 섞인 목소리로 소개했다.
이들이 밝힌 설날 풍경은 남한의 7-90년대 초반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설날 몇 달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느라, 주부들의 손은 바빴고, 설날을 위해 설빔(새 옷)도 준비하고, 집안 대청소에 골목까지 청소를 마친다. 설날 아침에는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을 생각에 아이들은 기대감으로 설렜다. 차례를 지낼 때도 온 가족이 줄을 지어, 지냈으며, 다함께 떡국도 먹고, 윷놀이 등으로 가족 간의 화합도 도모했다. 찾아 오는 손님 맞을 준비로 주방은 북적였고, 대접할 음식을 위해 풍성하게 음식도 만들어냈다.
이러한 우리네 설날 풍습은 허례허식을 일소(一掃)하고 그 의식절차를 합리화함으로써 낭비를 억제하고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함을 목적으로, 관혼상제의 의식절차를 대폭 간소화하여 제시한 법률인 가정의례준칙이 생기면서 점차 설날 분위기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새해 1월 1일 신정 쇠기를 권유하면서 설날이라고 하는 규정한 구정도 휴일에서 제외된 적도 있다. 또한 국내 산업이 급발전과 핵가족화로 변하면서 민족 최대 명절은 점차 단순히 긴 연휴, 그리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그런 명절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새터민들,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국 명절은 너무 조용, 이웃간 정 필요, 통일 빨리 되길 기원
이런 국내 설날 분위기에 대해 이들 새터민 여성들은 "한국이 다 좋은데,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때가 되면 너무 조용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외로울 수밖에 없다. 고향이 그리워도, 어디에 그 그리움을 표출할 때도 없다. 그래서 인지,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더 그립다"고 동시에 아쉬움을 쏟아냈다.
또한 이들은 "한국에서 살다 보니, 이웃 간 정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서로 인사하면서 정답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며, 이웃 간 인사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같은 동향 출신으로 가족같이 지내고 있는 이들 새터민 여성들은 "쌀 1포 대라고 북한에 보내고 싶다. 우리는 여기 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설날이라고 음식도 북한식 그대로 차리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어 너무 아쉽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가족들과 다 같이 즐겁게 밥을 먹고 싶다. 우리 조금만 더 참고, 힘내자, 건강해, 사랑한다"고 북한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대한 설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북한 이탈 새터민은 지난해 기준으로 3만 여 명을 돌파했다. 현재 중국, 등 해외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도 10만 여명에 달한다고 있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남북 단일팀, 예술단 공연, 응원팀, 등 남북 교류에 물꼬가 트이고 있다. 또한 남북 정상 회담도 추진되는 등 향후 교류가 기대되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해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제재는 지금과 같이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매우 높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월 12~13일 양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26명을 대상 전화면접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대북정책 기조와 관련해 '제재를 유지하면서도 대화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72.5%로 매우 높게 나왔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통일"이라는 노래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유를 찾아, 생명을 찾기 위해 북한을 이탈한 새터민, 그리고 6.25 한국전쟁 등으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현재 국내 곳곳에서 거주하면서 통일을 고대하고 있다.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새터민들에게는 한국이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주위의 배려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터민 C씨는 "국내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많다. 이들이 갈 곳이 없다. 서로 이웃과 즐길 수 있는 공간 마련도 필요하며, 또한 서로 정을 공유할 수 있는, 그리고 자연스레 한국에 녹아들어 갈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더불어 통일이 하루 빨리 이루어 지기를 기대해 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2018년 설날을 맞아서, 소원과 덕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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