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의 비바록] 이방카 국빈 대우한다고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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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02-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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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딸 비위 맞춘다고 호들갑 떤들 잔재주 피우는 게 외교라면 누군들 못하나

  • 다음 한국 수순은 남북정상회담 위해 연합군사훈련 연기?…

  • ‘또 당할 텐데’…워싱턴DC의 심각한 對韓 의구심

  • 중심 못 잡으면 기껏해야 미·북한의 ‘봉’

[사진=김현일]



뉴욕 퀸스와 브롱스 남쪽을 연결하는 교량이 화이트스톤 브리지입니다. 멀리 맨해튼이, 아래로는 이스트 허드슨 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곳을 지나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광경이 있습니다. 땅값 비싼 뉴욕에 황량한 벌판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저 건물 공사장이 보여 이제야 개발에 착수하나 싶은데, 더 의아한 것은 그 옆에 TRUMP LINKS라는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짐작 가시지요.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골프장입니다. 2015년 개장했지만 5성급 클럽하우스 건축이 끝나지 않은 겁니다. 링스 코스답게 나무가 거의 없어 겨울철엔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실은 페스큐 잔디가 깔린 아름다운 퍼블릭 골프장입니다. 맨해튼의 10여개 초호화 건물과 미국에만도 7개의 골프장을 보유한 부동산 재벌의 작품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지금 나라 안팎이 뒤숭숭한 마당에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힐난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은 백악관 선임고문인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얘기를 한다는 게 그리 됐습니다. 2년여 전 위 골프장 개장식 날 트럼프 ‘회장’은 가족들을 대동하고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 헷갈리게 한 것은 세 번째 부인인 멜라니아와 함께 첫 번째 부인 사이의 소생인 이방카가 구두 굽이 10㎝가 훨씬 넘는 킬힐을 신었기 때문이지요. 나풀거리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이방카는 멋진 티샷을 날려 주위를 놀라게 했고요. 킬힐 굽이 잔디에 박히지 않았으니 그럴 만했습니다. 하기야 영부인이 된 멜라니아 여사는 남편의 수해지역 시찰에 따라 나서면서 킬힐을 신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니 이들 가족의 킬힐 사랑인지 뭔지 고집들은 대단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대선기간 중 아버지 트럼프 후보의 성추문까지 받아넘기는 등 두루 공을 세운 이방카와 이방카 남편 재러드 쿠슈너는 백악관 선임고문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족벌주의(Nepotism)라는 여론의 비난은 귓등으로 흘려버렸습니다. 패션·화장품 사업과 부동산으로 10억 달러 재산을 가진 이방카 부부는 명실상부한 실세입니다. 대통령을 꽉 잡고 있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방중 초청장을 보내는 등 세계 각국이 줄을 대느라 여념이 없다는 게 과장이 아닙니다. 

바로 그 이방카가 백악관 선임고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합니다. 한국정부는 평창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25일 방한하는 그를 정상급 의전으로 예우키로 했는데, 호들갑 떠는 모양새가 켕겼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데 적극 나서는 중입니다. 메르켈 전 독일총리는 G20 여성경제정상회의에 그를 직접 초청했고, 아베 일본 총리는 10여분 간 식당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는 등등 과공이 아님을 절절히 역설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한국정부의 국빈급 환대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정부의 의전을 지켜본 뒤 자기 부친과 메시지를 이리저리 수정하자고 제안하리란 기대는 유치한 발상일 겁니다. 미리부터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수준’ 운운하는 소리나 지껄이니 주고서도 욕먹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평창 개막식에 참석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현장에서 한국정부의 행태를 직접 확인한 참입니다. 펜스 부통령 방한 이후 워싱턴 DC의 주된 기류는 ‘우려하던 대로 역시’입니다. 인도양의 3함대 전력까지 한반도 해역에 집결시켜 북한을 옥죄려던 전략이 한국의 김 빼기로 무산되는 데 대한 거부감은 ‘엄청’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합니다.

‘한국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과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이냐? 남한의 퍼주기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전부’라는 부정적 진단이 워싱턴 DC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거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양해와 대북 지원’을 양해하는 대신 상당한 대가를 한국으로부터 챙길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으나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북한에 핵·미사일 완비 시간과 돈만 지원할 뿐이라는 겁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유예선언’ 수용은 북한의 기만 쇼에 또 넘어가는 최악의 선택이라며 완강합니다. 적당히 넘겼다간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한국정부가 평창올림픽을 이유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반하는 요청을 해왔듯이 남북정상을 빌미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나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하면 상황이 꼬인다는 겁니다. 이래저래 짙은 밤안개 속을 헤매는 한반도 상황인데, 확실한 것은 한국으로선 잘해봤자 미·북한의 ‘봉’이 될 처지니 딱합니다. 그래서라도 평화통일에 다가서면 다행이지만···.

여자 문제에 관한 한 원체 호가 난, 축축한 트럼프 대통령이라서 수시로 터져 나오는 섹스 스캔들이야 그럭저럭 넘기지만 러시아 스캔들 특검의 칼날은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궁지 탈출용 군사행동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관측이 워싱턴 DC에 드리워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더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한 예방 타격 불가피론이 힘을 얻는 것입니다. 매번 당하면서도 북한을 감싸는 한국의 대북 우호가 단순히 ‘순진’해서가 아니지 않으냐는 의구심마저 깊어진 것도 한반도 위기와 관련해 우려를 더하는 대목입니다.

이방카에게 공을 들이는 한국 정부의 속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사태를 이쯤에 이르게 해놓고 요란을 떠는 행티부터가 미덥지 않습니다. 일 저질러 놓고 나중에 상대 비위 맞춘다고 해결되는 게 외교라면 누구인들 못할까요. 잔머리나 굴리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약자일수록 의연해야 합니다. 상호 신뢰 구축은 기본이니까 두말할 나위 없고요. Viva ROK!을 외쳐봅니다만 소리가 예전 같지 못합니다.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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