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4바퀴를 남기고 바통을 터치하는 과정에서 김아랑이 넘어졌다. 바통 터치를 이미 받은 김예진이 그대로 질주했다. 이때 캐나다와 이탈리아 선수가 넘어졌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한국 선수들이 심판 판정 결과를 기다리며 경기장 중앙의 전광판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오랜 침묵을 깨고 “와!”하는 소리와 함께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참았던 감격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기뻐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3000m 계주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팀은 역시 적수가 없는 ‘절대 강자’였다. 심석희-최민정-김아랑-김예진이 나선 한국은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4분07초361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짜릿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우승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여자 30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이 종목 세계 최강임을 다시 입증했다. 한국은 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계주에서 총 6개의 금메달을 가져오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고도 실격을 당했던 2010년 밴쿠버대회를 제외하면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위대한 역사를 썼다.
여자 3000m 계주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열린 1992년 알베르빌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한국은 1994년 릴레함메르대회부터 전이경을 앞세워 금메달 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대회까지 이 종목 4연패의 역사를 썼다.
이후 한국에 대한 견제가 심해졌다. 2010년 밴쿠버대회에서는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당시 김민정이 뒤따르던 중국 선린린의 얼굴을 오른팔로 건드렸다는 이유로 실격 판정을 당해 금메달을 중국에 내줬다. 이후 석연찮은 판정으로 논란이 됐다. 하지만 한국은 4년 뒤 소치대회에서 심석희의 막판 스퍼트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되찾았다.
이번 대회 여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최민정은 이날 금메달을 추가하며 한국 선수들 가운데 처음으로 대회 2관왕에 등극했다. 또 심석희와 김아랑은 4년 전 소치대회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계주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27바퀴를 도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치열한 승부가 이어졌다. 심석희→최민정→김아랑→김예진의 순으로 나선 한국은 경기 초반 맨 뒤로 처져 체력을 비축하며 기회를 엿봤다. 서서히 고삐를 조인 한국은 ‘역전의 명수’ 심석희가 빈틈을 노렸다. 다섯 바퀴째에 3위로 올라선 뒤 열세 바퀴째에 다시 심석희가 2위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열다섯 바퀴째엔 3위로 내려가 다시 기회를 기다렸다.
중국과 캐나다가 선두권을 지키는 가운데 여섯 바퀴를 남기고 김아랑이 스퍼트를 시작했다. 경기장이 후끈 달아오르자 중국과 캐나다의 견제가 심했다. 타이밍을 놓친 한국은 김아랑이 두바퀴 가까이 트랙을 돌며 승부수를 던졌다. 무리한 레이스 탓에 바통을 터치하는 과정에서 김아랑이 넘어져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김예진이 아랑곳하지 않고 치고 나갔고, 이때 캐나다와 이탈리아 선수가 넘어져 ‘영원한 라이벌’ 한국과 중국의 2파전이 펼쳐졌다. 한국은 세바퀴를 남기고 중국을 넘어 선두로 올라섰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최민정이 끝까지 1위를 지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를 마친 뒤 여자 쇼트트랙 박세우 감독은 “천국에 계속 와 있는 기분”이라며 “우리 선수들이 강한 비결의 바탕엔 힘든 훈련을 견딘 정신력이 있는 것 같다. 들어가기 전에 이 종목만큼은 중국을 이기자고 결의를 다졌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감격해했다.
경기를 마친 뒤 비디오 판독 결과 중국과 캐나다의 실격이 선언됐다. 혹시나 했던 한국의 페널티는 없었다. 중국은 경기하고 있지 않던 우리 선수들을 방해한 이유로 페널티를 받았고, 캐나다는 우리 선수를 밀어 실격됐다. 중국과 캐나다의 실격으로 이탈리아가 은메달, 순위결정전에서 1위에 오른 네덜란드가 동메달의 행운을 누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