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영화 ‘골든 슬럼버’(감독 노동석)은 강동원에게 도전이자 스펙트럼의 확장이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벌어진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의 도주극을 담은 작품 속, 강동원은 성실한 택배기사 건우를 연기했다.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고, 답답할 정도로 순하고 성실한 성격”을 가진 건우는 강동원이 연기해온 어떤 인물들보다 현실적이고, 평범하며, 가장 강동원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저는 스스로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지점이 (건우와) 비슷하게 닮아있어요. 극 중 ‘손해 좀 보면 어때요?’라는 건우의 대사가 있는데 실제로도 제가 자주 하는 말이거든요. 바보 같은 면도 있고, 때로는 멍청하게 느껴지지만, 그저 잘 살고 싶고, 치사하게 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비슷해요.”
강동원의 정서와 꼭 닮은 건우. 작품과 캐릭터 설명을 듣기만 해도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골든슬럼버’는 강동원이 영화사 집에 영화화를 제안한 작품으로 무려 7년의 세월을 거쳐 극장가에 걸리게 됐다.
“제가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고 해서 애정이 더 있고, 다른 영화는 애정이 없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제가 제안했으니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 제작을) 제안했는데 잘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죠.”
하지만 ‘골든슬럼버’의 완성본은 강동원의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만족을 드러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잘 나온 것 같아요. 물론 아쉬운 지점도 있지만, 생각한 방향이나 리듬감, 그 안에서 소소한 재미들이 잘 살아난 것 같아요. 100억대 영화고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어요.”
영화 ‘골든슬럼버’는 원작 소설과 많은 부분 궤를 달리한다. 한국적 정서를 덧댄 작품으로 건우와 친구들의 분량, 결말 부분 등 차이가 있었던 것.
“엔딩 같은 경우는 초기부터 원작과 설정이 달랐어요. 허무하다고 할까? 원작은 평생 숨어 살아야 하는데 극 중 인물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복수하고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서도 그 점을 수락해서 결말을 수정하게 되었어요.”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광화문 로케이션에 성공,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동원은 “(촬영이) 안 될 줄 알았다”며, “허무맹랑한 꿈일 거로 생각했다”며 웃었다.
“촬영이 결정되고 바로 전날 위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예요. 촬영 장비도 빌려놓고 준비를 다 해놨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촬영을 취소하라고 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죠. 그렇게 몇 억이 날아갔는데 다시 허락받고 찍게 됐어요. 그때가 한창 집회를 할 때였는데 탄핵집회, 태극기 집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였죠. 딱 그 중간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누차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고 강조하더라고요. 친한 PD님인데 ‘기회가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저는 똑같다’고 농담하곤 했죠. 혹시나 촬영이 잘 안 될 걸 예상해 합성까지 준비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다행히 폭파도 잘 됐고 촬영도 순조로웠죠.”
육체적으로, 심적으로도 고생이 심했겠다는 말에 강동원은 씩 웃으며 “고생이 고생 같지 않다”고 한다. 현재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인랑’을 찍고 있는 터라, ‘골든 슬럼버’의 고생은 고생이 아닌 것 같다고.
“힘든 지점도 많았는데 재밌게 찍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좋고, 스태프들도 좋고…. 제일 힘들었던 건 군중신이었던 것 같아요. 다들 하구수에서 촬영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이미 ‘가려진 시간’에서 경험을 해봤거든요. 하하하. 얼마 전 엄태화 감독이 문자를 했더라고요. ‘또 들어갔냐?’하고.”
“특수분장이 재밌더라고요? 원래는 그냥 제 얼굴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뭔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섬뜩할 거로 생각해서 특수분장을 했어요. 제가 짝눈인데 쌍꺼풀을 없애고 코를 더 높이 세웠거든요. 특수분장을 조금 하니까 얼굴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특히 코의 경우는 사람 얼굴에서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포인트를 줬으면 하고 바랐어요. ‘세상은 이미지’라는 메시지와도 닮았고,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는 설정과도 부합되고요.”
영화 ‘마스터’에 이어 ‘1987’, ‘골든슬럼버’에 이르기까지. 강동원은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게 됐다.
“‘1987’은 여러 지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첫째로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기억에서 잊히는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싶었죠. 또 ‘골든슬럼버’의 경우는 어떤 사람에게 프레임이 씌워져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연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건 이런 영화는 사건을 해결해나갈 때 스스로 멋지게 해결하곤 하는데 건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만 받고 살아남는다는 거였어요. 오히려 휴머니즘이 느껴져서 좋았죠.”
강동원은 김지운 감독의 ‘인랑’ 촬영을 마치고 3월부터 할리우드 재난 영화인 ‘쓰나미LA’(감독 사이먼 웨스트) 준비에 들어간다.
“큰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어요. 한국영화가 계속 한국에서만 개봉한다면 발전이 없으니까…. 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 시장에서는 대작이라고 해봐야 100억인데 너무 힘들게 찍거든요. 현장이 너무 힘드니까요. 제작 환경을 개선하려면 돈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러 군데에서 (개봉을) 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또 배우가 유명해져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해외 진출을 꼭 해보고 싶었죠. 경험도 하고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차근차근, 꾸준하게. 강동원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목표를 이뤄나가고 있다. 이에 “올해 바라는바”에 관해 묻자, 그는 대번에 “‘골든슬럼버가 잘 됐으면 좋겠다”며 웃는다.
“‘마스터’ 이후 1년 만에 개봉하는 영화니까요.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고, ‘인랑’도 무사히 찍었으면 좋겠어요. 부디 병원에 실려 가지 않고 잘 마치길 바라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