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2바퀴를 남기고 이승훈의 폭발적인 스퍼트가 시작됐다. 완벽한 코너링과 멈추지 않는 질주. 이승훈은 순식간에 모든 주자를 제치고 당당히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만화 같은 ‘폭풍 레이스’였다.
반 바퀴를 남긴 크라머는 이승훈의 대역전극을 바라보며 허벅지에 양 손을 올린 채 레이스를 포기했다. 이승훈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크라머는 16위(최하위)로 결승선을 지나갔다. 짜릿한 매스스타트의 묘미였다.
이승훈은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추가해 개인 통산 5번째 올림픽 메달을 수확했다.
매스스타트 초대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선 이승훈은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종목에서 우승해 영광”이라며 “스케이팅화를 벗는 날까지 뜨거운 레이스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이날 막판 질주에 대해서도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만 생각하고 준비했다”며 “다행히 올림픽에서 적중했다”고 기뻐했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이승훈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향해 또 다른 질주를 준비한다. 이승훈은 “베이징 대회를 준비할 생각이다. 참가에 목적을 두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미 전설이 된 이승훈은 4년 뒤를 약속하며 다시 달린다.
그러나 김보름은 이승훈의 감격과는 달랐다. 김보름은 은메달을 목에 건 뒤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시상대 위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김보름이었다.
김보름은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8분32초99를 기록하며 일본의 다카기 나나(포인트 60‧8분32초87)에 이어 2위(포인트 40)로 결승선을 통과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설움을 씻고 따낸 올림픽 생애 첫 메달이었다.
그러나 웃지 못했다. 김보름은 앞서 출전했던 팀추월 종목에서 ‘팀워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팀추월에서 같은 팀으로 나선 노선영을 배려하지 않는 주행으로 ‘왕따 논란’이 불거졌고, 이후 공식 사과 기자회견까지 열리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 때문에 매스스타트에 나서는 김보름을 향한 응원보다 비난의 목소리가 컸다.
김보름은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지금 생각나는 말이 ‘죄송합니다’ 밖에 없다”고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또 “저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것 같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속죄의 눈물’만 흘렸다.
김보름은 최고의 레이스를 펼치고도 피땀 흘린 4년을 잃었다.
올림픽 초대 매스스타트 메달리스트가 된 두 올림픽 영웅의 엇갈린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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