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적절한 조건'이 마련돼야 양측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 여부에 따라 최대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기존의 대북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만남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의욕을 나타냈다"며 "미국도 북·미 대화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만 '적절한 조건(right conditions)'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북한 지도부의 입을 통해 북·미 대화 가능성을 공식화한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대화를 성사시키려면 '북핵 위협 중단'을 전제로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북·미 대화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전임 행정부는 지난 25년간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면서 "특히 전임 클린턴 정부가 지원한 수십억 달러를 활용해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했다"고 비판한 점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25년 전인 1993년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첫 임기가 시작된 해다. 클린턴 전임 정부부터 오바마 전임 정부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차단하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로이터통신 등을 통해 대북 정책과 관련, 과거 정부를 비난했었다.
CNN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 위협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 진전에 주목하는 것도 북한의 대(對)미 핵무기 공격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 등 백악관 안팎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비핵화 등 북한의 태도 변화를 수차례 강조해온 만큼 향후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의 비핵화'를 북·미 협상의 최종 목표로 두고 최대 압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는 것이 외신의 반응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국가의 역할론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대북 압력을 통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다만 러시아는 북한과의 물자 교류를 늘리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에 따라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의 역할론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지통신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이 북·미 대화 의사를 표명했지만 한편으로는 핵·미사일 개발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며 "한국, 미국 등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해 고도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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