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9월 공산당 지도 하에 설립된 정협은 각계 대표들이 모여 국정 방침에 대해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협상한다는 취지로 대만·티베트·종교·소수민족 등 민감한 문제를 두루 맡아왔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함께 양회(兩會)로 불리며, 연례적으로 3월 초에 실시하는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로 꼽힌다.
올해 양회는 지난해 10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 이후 열리는 첫 양회다. 정협 주석은 19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왕양(汪洋)에게 넘어갔고, 정협 부주석 23명 중 절반가량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4일 중국 후룬(胡潤) 연구원이 발표한 ‘2018 양회에 오른 기업가 보고서’에 따르면 3일 개막한 정협에 참석한 2158명의 위원들 중 절반 이상이 처음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벌 기업인이 크게 줄었다. 이번 정협 위원과 전인대 대표 가운데 개인 재산이 20억 위안이 넘는 부호는 152명으로 지난해보다 56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락한 56명 대표 중 상당수는 부동산 업계 종사자로 궈광창(郭廣昌) 푸싱(復星)그룹 회장, 왕원쉐(王文學) 화샤싱푸(華夏幸福)그룹 회장 등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이달 3일 개막한 정협 대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기업 부문에서 IT 기업 대표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중 하나인 '징둥닷컴' 회장 류창둥(劉强東), 중국 2위 모바일 게임업체 '넷이즈' 창업자 딩레이(丁磊) 회장 등 IT 업계의 신성들이 정협 대표단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알리바바에 초기 투자한 벤처캐피털 '세쿼이아'의 닐 선 파트너와 10억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微信·웨이신)을 만든 마화텅(馬化騰) 텐센트 그룹 회장도 이름을 올렸다.
푸융젠(蒲勇健) 중국 충칭(重慶)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의 산업 구조가 기술집약형으로 변하면서 지도부는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의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며 "부동산 종사자의 정치적 영향력은 갈수록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의 대표적 부동산 재벌인 쉬자인(許家印) 헝다(恒大·에버그란데) 그룹 회장은 정협 대표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비제(畢節)시에서 ‘빈민 구제’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등 몸을 낮춰 당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분이라고 여겨진다.
지난해 정협 대표로 참석했던 중국의 '국민 여가수' 쑹쭈잉(宋祖英), 육상스타 류샹(劉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莫言), 영화감독 천카이거(陳凱歌) 등 문화계의 유명인사들이 정협 위원에서 대거 탈락했다.
또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등 혁명 원로들의 자제도 대폭 물갈이됐다.
그간 양회 때마다 언론의 주목을 끌었던 재벌 기업인이나 연예인, 혁명 원로 자제 등이 크게 줄어들면서 분위기가 한층 경색됐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민간외교기관인 차하얼(察哈爾)학회 덩위원(邓聿文) 연구원은 “그동안 양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관료와 재벌 대표가 지나치게 많다는 불만이 있었다“며 ”이번 양회에서는 이런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공 대표 비율을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양회의 위원·대표 가운데 노동자 및 농민의 비중은 15.7%로 전년보다 2.3% 포인트 늘어난 반면 당 간부의 비율은 대폭 하락했다.
이와 더불어 예년보다 삼엄해진 보안 경비로 양회 분위기가 한결 위축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회의장 주변에서 이뤄진 주요인사 인터뷰와 외신들의 취재 등이 일부 통제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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