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막상 겪어보고도 알기 힘들다.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날벼락 같은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저 팔자소관이요, 운명이다. 다만, 그가 ‘날벼락을 때리기 전에 29번의 뒤통수 치기와 300번의 딴지걸기로 보내는 신호’를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될 때, 특히 젊은 남녀가 결혼을 위해 맞선을 볼 때나 입사 면접 때 ‘처음 30초’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의 첫인상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30초에 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하다. 큰 키, 잘생긴 얼굴, 보기 좋은 몸매, 잘 입은 옷 등 외모가 판단 요소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남녀 불문하고 눈트임, 쌍커풀, 코높이를 위해 귀한 얼굴에 ‘칼’을 대는 이유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제 사람을 겪어 보면 30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처음에야 외모가 전부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 등 다른 요소가 얼마든지 매력의 포인트로 작동한다. 그중 중요한 포인트 하나가 재치와 유머감각이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사윗감을 고를 때 우선 술버릇이 어떤지 술부터 마시게 했다는데, 서양에서는 ‘유머감각’을 봤다고 한다. 감각은 ‘어떤 자극에 대해 인식하고 반응하는 능력’이다. 고로 마음 먹는다고 당장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개발이 필요한 실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유머감각이 뛰어난 것과 잘 웃기는 것을 동일하게 생각한다. 개그맨처럼 주위를 웃기는 사람, 속된 말로 ‘구라’가 좋은 사람이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무뚝뚝하던 사람이 유머가 있는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 수첩에 소재를 적어 다니다 ‘웃긴 이야기 하나 하겠다’며 그걸 풀어놓는다. 지금이라면 성희롱에 걸려 곤욕을 치르겠지만 아주아주 예전인 20세기 후반, 어엿한 남녀들의 모임에서 좌장 격 인사가 분위기를 띄운다며 음담패설에 가까운 ‘Y담’을 시작하는 문화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코미디 각본은 진정한 유머가 아니다. 유머는 그 사람의 평소 인품과 사태를 통찰하는 안목에서 순간적 반응으로 나오는 인성의 일부다. 유머감각을 이야기할 때 모르면 간첩이 되는 세 사람이 있다. 처칠 총리, 링컨 대통령, 발명가 에디슨이다. 이 세 사람은 예기치 못한 불쾌한 상황이나 곤혹스러운 상황 앞에서 화를 내거나 쩔쩔매지 않고 유머로 가볍게 상황을 역전시켰다.
잦은 지각을 꾸짖자 ‘예쁜 아내와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응수했다는 처칠, 의회에서 상대 당 의원이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 비난하자 ‘내 얼굴이 두 개라면 하필 이 얼굴을 가지고 왔겠느냐’며 간단히 물리쳐 버린 링컨, 전등을 발명하기 위해 2000번이나 실험에 실패를 거듭한 것을 묻는 기자 질문에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불이 안 켜지는 2000가지 방법을 알아냈을 뿐’이라 했다던 에디슨.
이들의 전기를 뜯어보면 자신이 추진하는 과업에 대한 강한 신념과 자신감이 유머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감이 넘치니 성격 또한 매사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을 터,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성공 스토리(Success Story)와 무관치 않더라. 신념과 긍정의 자신감이 몸에 배어 나오는 유머가 성공과 함께 화살 꽁무니처럼 붙어 다니더라. 유머감각은 특별한 공부로 느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자연현상이더라.
그러니까 평소에 좀 ‘웃기는 짬뽕’ 같은 사람으로 느긋하게 살고자 노력할 일이다. 100개의 걱정 중 96개 걱정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거나 닥쳐도 인간의 힘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천재지변, 나머지 4개도 닥치면 그때야 헤쳐 나가면 될 일이다. 걱정으로 걱정이 해결되면 걱정도 없겠지만 걱정은 걱정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죽마고우들과 산에 오르며 내일은 내일, 희희낙락하는 정도의 여유로만 살아보자. 누군가가 “지구가 왜 기울어 있느냐”고 물으면 지구과학 모른다고 기죽지 말고 “내가 안 그랬거든”이라 맞받으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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