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남북 간 해빙 무드 조성에 중국의 역할이 있었다고 자평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를 재촉구했다.
최근 경제분야에서 미국의 도발로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 대해서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서구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중국 붕괴론' 및 '중국 위협론'을 언급하며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왕 부장은 8일 베이징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미디어센터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다양한 이슈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전했다.
북핵 문제의 경우 "국제사회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화제"라며 "남북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긴밀하게 접촉해 한반도 정세에 난류를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정확한 방향으로 중요한 한발을 내디뎠다"며 "남북의 노력을 지지하며 특히 북·미 양측이 신속하게 접촉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역할론도 강조했다. 그는 "올림픽 기간 중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한국과 미국도 군사 훈련을 중단했다"며 "이는 중국의 '쌍중단'(雙中斷·북한 핵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제안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처방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국은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및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에 따라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며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쌍중단과 쌍궤병행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한 북핵 문제 해법이다.
왕 부장은 '빙동삼척 비일일지한(氷凍三尺 非一日之寒·세 척이나 쌓인 얼음은 한나절 추위로 이뤄진 게 아니다)'이라는 성어를 인용하며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제 서광이 비치고 있지만 앞에 놓인 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며 "각국은 대화와 담판 재개 추진에 힘을 다해야 하며 중국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 역할 대신할 생각 없다"
이날 기자회견의 또다른 화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발발 가능성이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폭탄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왕 부장은 "양국은 세계 평화와 안정, 번영을 수호하는 데 중요한 책임이 있다"며 "경쟁할 수는 있지만 경쟁자가 될 필요는 없고 오히려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무역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며 모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며 "양국이 평온한 마음 자세로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미국의 우려섞인 시각을 의식한 듯 "중국은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다"며 "우리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을 갈 것이며 많은 국가가 이를 환영하고 인정한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중국 붕괴론'과 '중국 위협론'에 대해서도 강도높게 비판했다. 왕 부장은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중국 붕괴론은 웃음거리가 됐다"며 "중국 위협론도 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사라진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세계 경제의 발전과 탈빈곤 측면에서 가장 큰 공헌자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평화 유지를 위한 인원을 가장 많이 파견한 국가"라며 "자유무역과 개방경제 유지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눈에 띄는 장면도 목격됐다. 러시아와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 대표적이다.
왕 부장은 다음달로 다가온 러시아 대선에 대해 "최근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영도 하에 중요한 성취를 이뤘다"며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들의 공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국민들이 다시 한번 정확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며 재선을 노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반면 일본 교도통신 기자의 질문을 받고는 "중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핀잔을 줬다. 행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올해 중·일 평화우호조약 40주년을 맞은 것과 관련해 양국 관계 전망을 묻는 질문에도 "일본이 머뭇거리거나 시간을 거스르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양국 관계도 다시 건강하게 회복돼 안정적 발전 궤도에 들어설 것"이라며 다소 냉랭한 답변을 내놨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