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법조인이 됐지만 외국에서는 법조인으로서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박 부장판사는 법조인이 된 소회를 밝히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아프리카 우간다에 의료봉사를 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우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박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베트남 사법부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돼 지원했고 지난해 2월 베트남으로 떠났다.
박 부장판사가 처음 본 베트남 법원의 위상은 너무 낮았다. 그는 “베트남은 공안(경찰), 검찰, 법원의 순으로 권력 순위가 매겨진다. 법원이 가장 위상이 낮은데 그만큼 불신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민사소송법에 ‘법원은 인민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가 하면 민사 재판에도 검사가 들어와서 재판을 감독한다”고 말했다. 최근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도 판사가 자리하는 재판정 법대에 검사가 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대법원과 KOICA의 도움으로 2012년 최고인민법원 직속기관인 법원연수원이 준공됐다. 기존에는 법원연수원이랑 조직만 있고 건물이 없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면 그제야 법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생겨났다.
이듬해에는 베트남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2차 사업이 시작됐다. 연수원 옆에 학교 부지를 새로 만들고 연수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박 부장판사는 “보통 후원을 받는 국가에서는 혜택을 받으려고만 하는데 베트남은 더 배우려는 열의가 강했다”며 “한국 대법원이 행정동, 강의동 등을 지으니까 베트남도 거의 같은 크기의 부지에 기숙사와 체육관 등을 짓겠다고 의욕을 보였다”고 말했다.
베트남 법관들은 한국 법원을 방문해 강사역량세미나 및 법률 연수를 받기도 했고, 판례제도를 배워가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약했던 베트남 사법부가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며 “법관들이 우리나라로 연수를 위해 초청됐을 때도 가정법원제도와 판례제도에 대해서도 강의를 듣고 이를 상당 부분 적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판례도 추가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기존에는 당이 법을 해석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 권한을 법원에 줬다고 볼 수 있다”며 “최근 판례를 추가적으로 개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많은 돈을 투자해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게 한국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법원이 올바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체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라면서 “베트남 법원 판사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공정한 재판이 이뤄짐으로써 베트남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던 한국 법인 역시 공정한 법 적용을 받게 돼 유리한 결과를 갖게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태도가 강했겠지만 이제는 올바른 법 적용이 수월해진 것이다.
그는 끝으로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곳은 법원밖에 없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베트남에서도 법조인 개개인 역량이 강화됨으로써 조직의 역량까지 강화되기를 바라며, 점차 법원이 강해진다면 다수 국민이 제대로 된 권리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