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개혁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지방의 성장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넘어 제2의 도약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장관 집무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중앙집권적 체제에 따라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자본을 지방으로 나눔으로써 대한민국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독립적인 지방정부가 자율과 경쟁을 통해 국가 전체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물론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어떤 제도이든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개인 소비자의 개성이 뚜렷한 상황에서 지방분권 강화야말로 세계화·지방화 시대에 국가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김 장관은 인터뷰 내내 부드럽고 차분한 말투로 논리정연하게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었다. 쉴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칠 법도 한데, 그의 눈빛에서 '지방분권을 이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6·13 지방선거를 몇 개월 앞두고 대구시장 유력후보로 손꼽히던 김 장관은 차출론에 대해 거듭 고사해 왔다. 의아함도 있었지만, 그는 약속했고 그 결심을 지켰다.
김 장관은 "국민과의 신뢰를 저버리면서까지 출마를 결심한다는 것 자체가 무뢰한 일"이라며 "국민들께서 일할 기회를 준 것인데, 불과 2년 만에 사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분권을 설계하고 이끌어갈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 작업에 매진하고, 국가위기 대처와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묻어났다.
그런 그에게 지방분권 추진 방향에 대한 철학과 소신을 비롯해 △재정분권에 대한 우려감 △안전문화 정착 조건 △미투(Me Too) 운동 확산 대책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방분권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그간의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방식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데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등 사회적 난제를 중앙정부의 획일적 리더십으로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제 지역 실정, 지역 주민의 희망사항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넘겨줘야 할 때입니다. 지방분권 개헌은 이런 지방분권의 방향과 가치를 국민적 합의의 최종 결과물인 헌법에 못 박는 일로 개혁의 핵심입니다.
구체적으로 지방분권이 국정운영의 기본방향임을 천명하고, 국정의 대등한 동반자로서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관계를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개헌을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수차례의 지방자치 활성화 노력에도 기득권에 밀려 좌절을 겪었던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색깔론을 제기하며 지방분권을 정쟁의 대상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하지만 지방분권은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적 사명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며, 정치적인 논쟁거리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보다 지방분권에 적극적이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다를 것입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지방분권 추진 의지를 갖고 있고, 동시에 시대상황도 지방분권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 지방분권은 중앙정부가 권한의 일부를 시혜적으로 지방에 이양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즉, 중앙집권적 방식의 지방분권을 추진해 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돈과 권한을 모두 지방에 이양하는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고, 지방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시대의 요구도 분명해졌습니다. 당장 지방 소멸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돈과 사람, 활력이 집중된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는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합니다.
현 정부 임기 내에 확실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지방분권의 비전과 전략을 담은 '지방분권 종합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지방분권의 핵심과제를 개헌안에 담는 것부터 시작해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지방분권 개헌 필요성에 대해 국민이 공감한다고 하지만, 실제 공감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국민들께서 지방분권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지방분권이라는 제도 또는 정책이 가지는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매일 입는 재킷이나 신발의 브랜드는 잘 알고 있지만, 이 재킷 또는 신발이 어떤 생산과정을 거치고 어떻게 품질이 관리되는지 시스템을 이해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지정책이나 교육정책 등은 집행에 따라 수준이나 혜택, 만족도가 바로 드러납니다. 반면 지방분권은 정책의 생산이나 전달에 해당하는 운영의 기본 틀로, 국민이 체감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기틀을 바꿔야 하며, 대안이 바로 지방분권입니다. 또 이를 국민적 합의인 헌법에 담아야 제대로 된 실천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국민 여러분께 더 자주, 더 많은 자리에서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지방분권 개헌의 절박함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재정분권이 실현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어촌 간 재정불균형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지방이 주민의 수요에 맞는 정책을 펼치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방재정 확충과 재정 자율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질적인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지방소비세율 인상, 지방소득세 확대 등 국세의 지방세 이양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직적 측면에서 중앙으로부터 지방정부로의 재정 이양을 그대로 진행하면 지역 간 재정불균형이 심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지역 간 세원 격차가 큰 상황입니다. 지방재정을 확충할 경우,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역은 재원이 늘어나고, 여건이 어려운 지자체는 힘들어집니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여건이 나은 수도권 등 부자 자치단체가 재정이 열악한 자치단체와 상생한다는 인식과 함께 서로 연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독일처럼 헌법이라는 국가 최고규범에 못 박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기조 하에 균형장치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재정조정제도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지방교부세의 균형기능을 강화하고, 지역상생발전기금을 확대·발전시켜 가겠습니다."
-지방분권 시대가 오면 자칫 지방정부의 방만한 행정이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듭니다.
"지방분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분권의 확대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이 지방정부의 부정부패나 부족한 역량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지방분권의 강화와 함께 그에 상응하는 지방정부의 역량과 책임성도 반드시 확보돼야 합니다.
지방의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방의회가 진정한 주민의 대의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집행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의회 구성이 다양화돼야 합니다. 특정 지역의 경우 지방의회 의석이 특정정당에 편중됐고, 비례대표 의석도 소수정당의 비중이 미미합니다.
지역주민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각계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의회로 들어와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서로를 견제할 때 지방의회의 전문성과 책임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제천·밀양의 대형 화재 사고를 겪고 난 후, 올해 진행하는 국가안전대진단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최근 대규모 재난안전 사고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무거운 마음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전까지는 국가안전대진단을 국민인식 개선에 중점을 두고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최대한 실질적인 점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한 내 완료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안전진단을 통해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당초 3월 말까지 계획했던 국가안전대진단을 2주간 연장, 4월 13일까지 진행할 예정입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 안전시설이나 건축자재에 투입되는 돈을 비용이 아닌, 생명보호를 위한 투자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합니다.
제천과 밀양의 화재사고처럼 값싼 드라이비트 외장재 사용,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 안전보다 비용절감에 치중한 나머지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또 가정이나 회사에서 여건에 적합한 안전 훈련을 반복 실시하고, 대피로와 화재안전 시설에 대한 점검을 제대로 이행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 확산으로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딸만 셋 키우는 아버지 입장에서 늘 불안합니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 위험이 놓여 있는 만큼, 여성에게 정말 위험합니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가 가볍게 치부하던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남녀 평등의 문화로, 사회의 인식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여성가족부가 공공부문의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 중점 추진하고 있습니다. 행안부도 전체 인원 3800여명 중 여성이 1100여명이고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미투 운동을 계기로 여성지향적 문화를 조성하겠습니다.
얼마 전 직원들에게 밝힌 바 있습니다만, 내년 세종으로 청사를 이전할 때 여성 편의시설은 볕이 잘 들고, 공기가 맑은 곳에 마련할 예정입니다. 또 승진·전보 등 인사에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외부 전문가가 대폭 참여하는 '성희롱·성폭력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자 상담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안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약속대로 대구시장 출마를 고사하셨는데, 아쉬움으로 남지는 않으셨습니까.
"제가 지난번 총선에서 대구로 내려간 것은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보겠다는 정치적 서원(誓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일이라면 한 몸 던질 각오와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다만 대구시민이 저를 뽑아주신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표를 내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지방분권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지방분권 개헌을 위해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맡겨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지방분권의 실현이 나의 소임이며 책임인데, 이를 다 완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고 해서 '나몰라라'하고 출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물론 대구의 정치지형을 바꿀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출마를 권했던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모두가 노력한다면 언젠가 대구도 여야가 대등하게 경쟁하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 약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1958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이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 학사,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16·17·18·20대 국회의원으로 △정무위원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 지난해 6월 행정안전부 장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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