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얼마나 멀까.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그들이 느낄 심리적인 허기는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하얀 얼음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거센 블리자드, 서울에서 무려 1만7240㎞나 떨어진 곳인 세종과학기지 대원들의 만찬은 어떨까.
올해는 우리나라가 세종기지를 창설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2014년 당시 세종기지 27차 조리대원으로 활동했던 강민재씨(32)의 말에 따르면 남극에 위치한 각국의 기지들은 유독 만찬이 많다고 한다.
"남극은 늘 춥기 때문에 시기에 따른 식단 변화가 없어요. 특별한 날에는 만찬을 합니다. 특별한 날은 새 월동대 입남극, 월동대 인수인계식,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 명절, 동지 그리고 기지준공기념일 등이 있어요. 이런 날에는 만찬을 열죠."
그중에서 그가 꼽은 가장 중요한 만찬은 기지준공기념일이었다.
"준공기념일은 2월 17일이지만 기상상황에 따라서는 3월까지 늦춰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남극의 여름기간인데, 대부분의 기지들이 이때 준공기념일 행사를 해요. 준공기념일이 비슷한 이유는 그나마 날씨가 좋을 때 공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강씨에 따르면 이 행사 때 세종기지에 5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저는 한식만 준비하면 외국인 연구원들이 못 먹을까봐 양식까지 준비했습니다. 13가지 이상의 음식을 100인분으로 준비하는 건 다른 대원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잦은 만찬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극은 해가 짧고 기온이 춥습니다. 모든 것이 한정적이죠. 연구활동을 제외하곤 모든 사람들이 꼼짝없이 실내에 갇혀 있어야 해요. 그럴 땐 먹고 싶은 게 많이 생각나요. 그런데 아무리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어도 신이 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허기는 채웠지만 뭔가 허전한 게 남아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남극은 외롭다. 잠깐 방문하는 사람들이야 남극이 신기하겠지만 그곳에서 1년 내내 생활해야 하는 이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이곳에서 각국 기지와 함께하는 잦은 만찬은 '연구 성과 교류'라는 목적보다도 '사람을 만나서 함께 밥을 먹는다'에 방점이 찍혀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세종기지 사람들이 먹고 싶은 것은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정(情)'이 아니었을까.
인터뷰 끝에 강씨가 밝힌 말은 한없이 이성적일 것만 같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해 인상적이었다. "세상 끝에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데요." 그렇게 세상 끝에서도 만찬은 이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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