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머니 속에 넣고 만지작거리던 '관세폭탄' 카드를 꺼내 들자마자 중국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전초전이 시작됐다.
양측이 작심하고 링에 오른 만큼 당분간 확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둘 중 하나가 무릎을 꿇어야 끝나는 치킨게임으로 치닫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커 결국 협상 테이블이 차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美, 500억弗 관세폭탄 투척…무역전쟁 승산 있나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중국산 제품에 최소 500억 달러, 최대 600억 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는 '중국의 경제 침약을 표적하는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우리 돈으로 54조~6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1300여개의 관세 대상 품목 후보군을 선정한 미 무역대표부(USTR)는 앞으로 보름 동안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최종 품목을 결정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조치 가운데 첫번째 조치"라고 강조했다. 실제 미 재무부는 첨단산업 분야와 관련해 중국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는 등 후속 조치를 마련 중이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진 지 6시간 뒤인 23일 오전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면서 맞불을 놨다.
사전에 단계별 대응책을 수립해 놓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경우 2단계에 걸쳐 미국산 과일과 강관, 포도주, 돈육 등에 30억 달러 규모의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양측 모두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태세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꺼낸 카드인 만큼 소기의 성과를 거둘 때까지 중국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미국으로 급파한 최측근 류허(劉鶴) 부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얼굴도 못 보고 돌아올 정도로 자존심을 구긴 상황이라 강경한 자세로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카드는 중국이 더 많아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대두와 수수 등 농산물이 첫 타깃으로 거론된다. 수입 제한이나 상계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산 항공기와 전자장비 등도 보복 관세를 맞을 수 있는 품목으로 꼽힌다. 미국 국채 매입을 줄이거나 보유 중인 국채를 대거 내다 파는 시나리오도 입길에 오르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커 당장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외신들은 트럼프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의 도움 없이 중국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며 "트럼트 대통령이 미국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무역전쟁으로 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활용할 수단이 그지 않지 않아 승기를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갈길 바쁜 시진핑, 왕치산 역량 시험대로
트럼트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택한 것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다. '강한 미국' 이미지를 과시하고 무역 분야에서도 실질적인 적자폭 축소를 이뤄내 오는 11일 중간선거는 물론 2020년 재선 승리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맞장구를 쳐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시 주석은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통해 임기 제한을 없애고 자신의 이름을 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헌법에 삽입하는 내용의 개헌을 이뤘다.
또 측근을 전진배치해 공산당과 국가기구, 군부를 완벽히 장악하는 사실상의 절대권력 체제를 완성했다. 그동안의 중국 정치 관행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이고 무리한 행보였다.
장기집권에 대한 대내외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경제적 측면의 성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오는 2020년까지 전면적 샤오캉(小康·중산층) 사회를 달성하겠다는 집권 2기의 핵심 국정 과제를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안정적인 경제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시 주석이 목표로 내건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향후 3년간 연평균 6%대 중반의 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장기화는 가장 피하고 싶은 최악의 국면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의 보복 조치로 자신의 핵심 지지기반인 미국 팜벨트(Farm Belt·농장지대) 주들의 피해가 커질 경우 마냥 공세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규모 감축에 협조하는 식의 협상 테이블이 차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대중 무역적자를 연 5040억 달러로 보고 있다"며 "이를 현재의 25%, 즉 1000억 달러로 줄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다. 내심 현 수준에서 1000억 달러 안팎을 줄이는 정도의 절충안을 기대하는 듯 하지만 중국이 받아줄 지는 미지수다.
이 과정에서 중국 양회를 거치며 국가부주석으로 복귀한 시 주석의 '오른팔' 왕치산(王岐山)의 활약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이 유능한 협상가이자 경제 전문가로 추켜세우는 그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끌어 낼 결과에 따라 세계 무역질서의 향방이 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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