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임시정부의 맏며느리 수당 정정화③] 당시 최대 지하조직 대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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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연 기자
입력 2018-03-2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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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슨 대통령에 진정서 발송

대동단단결선언문 [사진=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제공]



조선민족대동단. 대동단은 1919년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조직으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불붙던 4월 초 결성되었다. 두암(斗庵) 전협(全協), 역전(力田) 최익환(崔益煥), 권태석, 권헌복, 정남용 등이 주축이었으며, 동농 김가진이 총재를 맡았다.

대동단 명칭은 최익환이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동단은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조직을 지향했다. 단원을 황족․진신단․유림단․종교단․교육단․청년단․군인단․상인단․노동단․부인단․지방구역 등 11개 지단으로 나누고, 각각의 조직책을 “총대(總代)”라고 불렀다.

대동단은 결성 직후인 4월, 조선민족대동단 명의로 파리강화회의에 <진정서>와 <윌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서>를 발송했다. 5월에는 <선언서>를 발표해, “조선 영원의 독립을 완성할 것”, “세계 영원의 평화를 확보할 것”, “사회의 자유발전을 광파할 것” 등 3대 강령을 제시했다.

1919년 11월 28일, 당시 음력으로 기념하던 개천절, 대동단은 서울 안국동 네거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시위에 나섰다. 대동단 독립선언서는 동농이 기초했으며, 동농과 의친왕 이강 등 33인이 서명했다. 이것이 1919년의 네 번째 독립선언이다. 이강의 망명 실패와 이 시위의 여파로 단장 전협, 최익환 등 주요간부와 조직원들이 체포돼 대동단의 국내조직은 붕괴되었고, 동농이 상하이 국외본부를 이끌었다.

 
김자동,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푸른역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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