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야드 14번 홀(파3). 1타 차 불안한 선두를 지키던 지은희가 신중하게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7번 아이언으로 날린 티샷. 타구는 그대로 핀을 향했다. 핀 우측 바로 옆에 떨어진 공은 굴러 그대로 홀에 빨려 들어갔다. 환상적인 홀인원. 3타 차로 달아나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결정적 한방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 가운데 최고참인 지은희(32)가 결정적인 ‘홀인원’ 한방으로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다. 뽀얗고 귀여운 얼굴에 검은 옷을 즐겨 입어 '미키 마우스'라는 별명을 가진 지은희의 화끈한 '부활쇼'였다.
지은희는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의 아비아라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KIA 클래식(총상금 18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홀인원 1개와 버디 5개,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를 기록한 지은희는 공동 2위 크리스티 커, 리젯 살라스(이상 미국)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난해 10월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 우승 이후 5개월 만에 LPGA 투어 통산 4승째를 수확했다.
지은희는 이날 우승과 함께 두둑한 상금과 부상도 챙겼다. 우승상금 27만 달러(약 2억9000만원)를 받은 지은희는 우승 부상으로 기아자동차 세단 스팅어, 홀인원 부상으로 기아자동차 소렌토까지 받아 자동차 2대를 한번에 손에 넣었다.
지은희는 김인경, 살라스와 함께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다. 13번 홀까지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낚은 지은희는 커에 1타 차로 앞서 있었다. 이날 승부는 14번 홀(파3)에서 사실상 결정됐다. 지은희가 짜릿한 홀인원을 기록하며 2타를 줄여 커를 3타 차로 따돌렸다. 승기를 잡은 지은희는 15번 홀(파4)과 18번 홀(파4)에서 보기를 범했으나 우승을 달성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2008년 웨그먼스 LPGA 대회에서 첫 정상에 오른 지은희는 이듬해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 스윙 교정이 문제로 지적됐고, 오랜 시간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 사이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어 은퇴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지은희가 다시 살아난 건 지난해 10월이다. 대만 대회에서 무려 8년 3개월 만에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재기에 성공했고, 이번 대회에서 다시 우승을 이뤄내며 화끈한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최종 라운드 승부처에서 홀인원으로 우승에 쐐기를 박는 스타성까지 보여줘 ‘제2의 전성기’를 실감케 했다.
극적인 우승을 이룬 지은희는 “오늘 샷 감이 좋았고, 퍼트도 잘 들어갔다”며 “다음 주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자신감을 얻게 돼 만족한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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