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대란'이다. 의결권을 대리행사하던 섀도보팅을 없애는 바람에 주총의안 부결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해법으로 전자투표가 꼽히지만 도입에 소극적인 상장사가 많다.
26일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상장법인 16곳이 올해 들어 23일까지 주총을 열었으나, 감사 선임을 비롯한 주요안건 처리에 실패했다.
이 가운데 소액주주 비중이 큰 코스닥 상장사는 13곳이다. 코스피 상장사는 영진약품, 코아스, 에이프로젠제약 3곳에 그쳤다. 소액주주가 많을수록 의결정족수 미달 사태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우리기술은 이달 22일 주총을 열었지만, 임원 보수한도 승인과 정관변경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소액주주가 보유한 우리기술 지분은 86%에 육박한다. 감사 선임에 실패한 이화공영이나 에프알텍, 대진디엠피도 비슷하다. 소액주주 비율이 45%를 웃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다수 국가는 기업정관으로 의결정족수를 정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정족수를 충족하기가 어렵다. 보통결의 사항을 보면 의결권 주식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참여해야 하고, 출석주주 과반이 동의해야 한다. 감사나 감사위원을 뽑을 때에는 더 까다롭다.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3%룰)한다.
주총 대란 1호는 영진약품이다. 이달 9일 주총에서 약 2% 지분이 부족해 감사를 못 뽑았다. 23.2%가 찬성했지만 최소 요건인 25%에 못 미친 것이다. 영진약품 대주주는 KT&G다. 지분을 52.5%가지고 있지만, 3%룰에 막혀 힘을 못 썼다. 에이프로젠제약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주총 자체를 연기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상장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12월 결산인 1947개 상장법인 가운데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회사는 이달 18일 기준 483곳으로 1년 전보다 30%가량 감소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상장사 810곳(41.6%)이 슈퍼 주총 데이(3월 22·23·28일)를 고집하면서도 전자투표를 외면했다.
황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3%룰은 감사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의결정족수 기준 완화는 보통결의 사항에 한정하거나 전자투표제 도입에 노력한 상장사, 소액주주 비율이 높은 회사에만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 선임 부결에 따른 과태료(5000만원 이하)는 면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자투표 도입을 비롯해 주총 성립을 위해 노력한 상장사는 현재 관리종목 지정을 면제해준다. 하지만 과태료는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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