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우리나라 대외경제정책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준 한해였다. 미국 자국우선주의 대두와 사드(THAAD) 이후 불거진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비시장조치 강화 등은 우리나라 대외경제정책을 시험대에 서게 했다.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가 일제히 미·중에 편중된 우리나라 교역구조 개선과 외교 전략 다변화를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아세안(ASEAN)에 대한 미래공동체구상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아세안 지역을 우리가 이용만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번영할 공간으로 인정하고 상생번영을 함께할 동반자로서 아세안을 인식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왔던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하고, 인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신동아시아 질서 창출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신남방정책 추진은 매우 시의성이 높았고, 이는 미·중에 집중된 우리나라 교역 및 외교 전략을 성공적으로 다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우선 협력동반자로 아세안을 주목하는 것은 높은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아세안을 더불어 번영할 이웃으로 인정하고 경제 및 외교 다변화 핵심지역으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 가운데 상품소비시장으로서 아세안의 가치를 들 수 있다.
2015년 기준 아세안 전체 인구는 6억3000만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약 2조5000억 달러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다음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2010~2015년 기간 연평균 약 5.5%씩 성장했고,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30년까지 6% 성장세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 덕분으로 아세안은 2020년 4억명의 중산층을 보유한 거대한 내수시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아세안의 두 번째 가치는 다양성이다. 아세안은 발전단계, 인구 및 국토 규모, 인종, 종교 및 문화 등이 상이한 10개국 모임이다. 각국이 서로 다른 경제 및 산업 특징을 발현하고 있다. 아세안 각국 경제발전 단계는 최하위 캄보디아부터 최상위 싱가포르까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를 제외한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중소득국은 인구 동태적 측면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증가하고 있고, 그들이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이런 국가는 노동집약형 산업에 비교우위를 보유한 반면, 싱가포르와 같은 고소득 국가는 잘 발달된 인프라와 법 제도를 바탕으로 지역총괄 및 연구개발 거점 기능을 갖췄다. 이처럼 국별로 상이한 비교우위를 토대로 국가 간 보완적 관계를 형성한다면 세계의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아세안의 세 번째 가치는 포용성이다. 아세안 존립토대인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은 새로운 다자체계 형성에 유연하며, 다양한 이해 당사국을 포용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ASEAN+3정상회의(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 등 동아시아 역내 다층적·다기능적 협력체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포함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및 체결하는 등 다자 및 양자협력에 주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2015년 말 아세안공동체 출범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아세안공동체 출범은 앞서 언급한 아세안 가치가 잠재력으로 끝나지 않고 성장동력이 되는 실질적 계기가 된다.
아세안 통합속도가 비록 유럽연합(EU)에 비해 더디지만, 서둘러 통합한 EU가 현재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경험하면서 회의론이 높아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서둘러 통합하기보다는 점진적인 통합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말 아세안공동체가 출범한 이후 역내 직접투자통계를 보면 2015년 213억4000만 달러에서 2016년 239억5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 기간 아세안으로의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이 1216억2000만 달러에서 967억2000만 달러로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세안공동체 출범이 역내 협력을 활성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보유한 아세안과 우리나라는 교역, 투자, 공적개발원조(ODA) 등에서 높은 수준의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양 지역 간 교역관계를 살펴보면, 2007년 6월 한·ASEAN FTA를 발효한 이후 연평균 5.7%씩 교역이 성장하면서 2016년에는 1188억 달러 교역액(한국 총교역규모 대비 13.2%)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2위 교역 대상지가 됐다.
미·중 중심 교역구조를 고려할 때 아세안의 중요도는 더욱 높아졌다. 특히 2007년 한·ASEAN FTA 체결 이후 지난 10년간 대(對)아세안 수출은 연평균 7.5%씩 증가해 중국, 미국, 일본을 앞서는 주요 수출지역이 됐다.
아세안에 대한 수출비중은 2007년 10.4%를 기록한 이후 계속 증가해 2016년 15% 수준으로 성장했다. 또한 2017년 10월까지 우리나라의 아세안 수출이 785억 달러로 전년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해 수출시장으로서 아세안의 가치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대일본, 대중국 수출이 감소세인 상황 속에서 대아세안 수출 회복은 우리나라 수출 다변화에 기여할 것이다.
양 지역 간 투자관계도 최근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아세안 총투자유입액 가운데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4.0%에서 2016년 5.9%로 급증했다. 한국수출입은행 국가별 해외직접투자 자료를 보면 2016년 투자금액 기준 아세안(14.5%)에 중국(9.4%)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아세안 사무국 자료도 2010~2016년 누적 기준 역외 국가들의 아세안 총투자 대비 한국 투자는 3.5%를 차지해 EU,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9위를 차지했다. 한국기업이 아세안으로 투자 진출해 수직분화하면서 상호보완적인 교역관계를 형성했고, 이는 상생의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
한국 다국적기업이 아세안 지역에 지역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추진함에 따라 포용적·질적 성장 기틀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기업 진출과 함께 최근 증가추세로 돌아선 한국 중소기업의 아세안 진출은 양 지역 경제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중요한 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 상당부분이 아세안에 집중되고 있는 부분도 주목할 대목이다. 1987년부터 2016년까지 총 39억3000만 달러가 아세안 개발에 공여됐는데 이는 우리나라 ODA 총액 약 28.5%를 차지한다.
최근 5년 동안 한-ASEAN 간 교역과 투자가 증가하면서 그 규모가 연평균 7.3%씩 증가했다. 또 한-ASEAN 협력기금을 1990년 조성한 이후 2016년까지 총 8100여만 달러를 공여했고, 2017년 11월 정상의 아세안 방문 시 1400만 달러로 증액을 약속했다. 신남방정책에서 아세안은 우리나라와 함께 번영할 협력파트너이므로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발협력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아세안이 이처럼 굳건한 협력관계를 형성해 왔지만 실효적인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우선 아세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공적개발원조가 이뤄졌지만, 우리나라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 공여규모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이다.
2012~2014년 3년간 한·중·일이 아세안에 공여한 개발재원 연평균 규모를 비교하면 한국은 약 7억7000만 달러, 중국은 49억6000만 달러, 일본은 46억1000만 달러 규모로 중·일이 한국보다 대략 7배 정도 많은 규모를 아세안에 공여하고 있다.
또한 투자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경쟁상대인 중국은 2010년 아세안 총투자유입액 대비 3.2%였는데 2016년에는 그 규모를 10.0%까지 확대하면서 우리나라보다 많은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2016년만 보면 중국의 아세안 투자규모는 98억 달러로 EU, 싱가포르, 미국, 일본, 홍콩에 이어 6위를 기록했다.
아세안에 대한 경쟁국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우리나라 입지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거대 규모 개발재원과 투자를 동원해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므로, 재원에만 의존한 협력전략을 수립하기보다는 우리만의 비교우위를 찾고 이를 활용한 협력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아세안 투자 가운데 38.6%가 베트남에 집중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삼성, LG 등 전기·전자 제조기업 투자가 베트남에 집중되면서 중간재를 납품하는 한국 중소기업이 동반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반진출은 우리 기업 간 거래를 확대했고,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기업 제품을 활용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려는 베트남 정부 의지를 고려할 때 우리 기업끼리의 거래가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소기업 성공사례와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는 현지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우리기업으로 내부화하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아세안을 사이에 둔 중·일 간 경쟁과다는 양국 긴장을 상승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일 모두 아세안을 수출시장이자 자국 생산네트워크에 포함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중·일 간 긴장 관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아세안 시장 장악력 및 인프라 진출 확대를 추진하면서 향후 10년간 정부 재원 1조 달러를 아세안을 포함한 65개국 인프라 건설에 지원할 예정이고, 일본은 1950년대부터 아세안에 진출해 소비시장 선점 및 생산기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아세안 외교 5원칙을 발표하면서 아세안과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안은 아세안 중심성에 기초해 이익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입지가 위축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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