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년의 밤’은 한순간의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 분)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 분)의 7년 전의 진실과 그 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시나리오를 받기 전부터 원작을 알고 있었어요.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만약 영화화된다면 오영제 역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7년의 밤’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오영제 역에 제가 캐스팅된 거예요. ‘이렇게도 되는구나!’ 감회가 새로웠죠.”
이번 작품에서 장동건은 딸을 잃고 지독한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세령마을 일대를 장악한 대지주로 원하는 건 무엇이든 반드시 손에 넣고 자신의 방식대로 교정해야 만족하는 인물. 자신을 피해 잠적해버린 아내에 이어 거듭되는 폭력에 도망친 딸 세령이 주검으로 돌아오자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소설 속 오영제는 샤프하고 댄디하고 예민한 인물이라고 느꼈어요. 독자마다 이미지가 다르겠지만 제게는 조금 더 예리한 인물처럼 느껴졌죠. 그런데 감독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안에 오영제 이미지가 다 무너지고 말았어요. (추창민 감독은) 완전히 저와 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추창민 감독이 그린 오영제는 거친 질감을 가진 사냥꾼 같은 이미지였다. “지역 소도시에 군림하는 권력자이자 힘이 센 중년의 남자”를 떠올렸다고.
“감독님은 자신이 모르는 것보다 아는 걸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동의하는 바였죠. 클리셰를 접어두자는 말에 설득됐어요. 저 역시도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오영제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분위기나 정서는 비슷해도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 같아요.”
장동건은 오영제의 거친 면모들을 표현하기 위해 외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줬다. 살을 찌우고 헤어라인 등을 만들어 낸 것.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죠.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무 ‘변신을 위한 변신’처럼 보일까 봐서요. 그런 우려들이 있었는데 분장하고 거울을 보니 낯선 모습이 오영제와 동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모를) 받아들이고 연기하게 됐죠.”
극 중 최현수나 안승환(송새벽 분)에 비해, 오영제는 맞지 않는 퍼즐처럼 어긋나 있는 이미지였다. 그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같았다. 아내와 딸을 학대하는 남자가 복수에 목매고 집착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오영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캐릭터를 규정하지 않으려 했어요. 여러 버전으로 연기해보고 과정을 겪으며 캐릭터를 쌓아나갔죠. 원작의 오영제는 차가운 이미지라면 영화 속 이미지는 뜨거운 이미지가 된 것 같아요.”
오영제를 이해하기 위해 장동건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에게 캐릭터에게 전사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감정으로만 보여주려 했다”며, 캐릭터에 군더더기를 빼고자 했음을 알렷다.
“전사에 관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치과의사로서의 모습이나 승환과의 관계 등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 생각했죠. 하지만 단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오영제의 전사에 대해) 저만 알고 있고 그걸 첫 등장부터 보여주는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죠. 감정으로만 보여줘야 하니까요. 전사 작업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어요.”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선과 악의 반전,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복이다. 장동건 역시 이 점에 주목했다고.
“우리 영화가 재밌는 점은 악인이 피해자가 되고, 선인이 가해자가 돼 복수하는 아이러니에요. ‘누구의 잘못일까?’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죠.”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고 집중하면서 장동건은 오영제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오영제를 악역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며,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해가 간다”고 설명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작품이었어요. 몸도, 체력도 많이 써야 해서 탈진할 상황까지 갔었죠. 영화 말미, 현수와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평소 잘 아프지도 않은데 그날따라 감기몸살에 걸려서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하필 이런 날, 아프다니!’ 속으로 원망도 했죠.”
장동건의 말처럼 ‘7년의 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격감이 있는 작품이었다. 딸 세령을 학대하는 장면을 찍을 땐, 장동건을 비롯해 추창민 감독 역시 고통을 호소했다고.
“소설 속에는 표현 수위가 높잖아요. 영화 속에서도 중요한 장면이라서 더 직접적으로 드러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 장면을 너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촬영 날부터 ‘찍기 싫다’고 하시기도 하고. 저는 오영제가 세령을 학대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오영제의 감정을 떠올리면 자연히 제 처지를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괜히 딸 생각하는 것도 죄스럽고 부정 탈 것 같아서 싫더라고요.”
고통에 몸부림친 보람(?)도 있었다. 원작자인 정유정 작가가 영화 ‘7년의 밤’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작자가 좋게 보셨다고 아니 정말 안심이 되더라고요.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훼손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원작보다 감정적인 걸 많이 부여하고자 했는데, 그런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 좋게 봐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7년의 밤’은 오락성보다는 작품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러닝타임 내내 묵직하고 압도적인 이야기와 영상이 펼쳐지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이 버거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인터뷰를 마치며 “왜 관객들이 ‘7년의 밤’을 봐야 할까요?”하고 묻자, 그는 “작품의 카타르시스”를 꼽았다.
“작품으로서의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어요. 작품으로서 이야깃거리 역시 분명하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작품, 그런 재미가 있으니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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