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산 김원봉. 사진=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제공]
상해로 온 우강은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붙잡혀가서 엄한 문초를 받았다. 연통제는 내무총장 직속의 비밀조직이라, 경무국장 백범은 우강을 왜놈 앞잡이로만 알았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뛰어간 수당 덕분에 우강은 살아났다. 반면, 수당의 망명을 도왔던 먼 친척 정필화는 일제의 끄나풀 노릇을 청산하지 못하고 동농을 귀국시키려는 모략에 가담했다가, 처단되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의 대열에 합류한 우강은, 일본군에 밀려난 장개석 정부의 임시수도 충칭(重慶)까지 백범과 수당을 비롯한 임정 식구들과 줄곧 함께 했다. 우강과 백범의 사연도 기가 막히지만, 의열단 의백(義伯)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과의 인연은 더 기구하다.
우강에게는 동선(東仙)이란 맏딸이 있었다. 수당의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를 닮아 말쑥하고 예뻤으며 아주 총명했다”고 한다.
그 애지중지하던 맏딸이 부인 박차정(朴次貞)과 사별한 약산에게 시집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펄펄 뛰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동선은 기어코 약산과 결혼한다. 이리하여 우강과 약산은 장인과 사위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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