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통상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이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사했던 2500억 달러(약 365조원) 규모의 돈보따리를 거둬들일 조짐이 감지된다.
500억 달러(약 53조원)짜리 관세 폭탄에 이어 미국을 압박할 또 다른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5일 중국과 홍콩 언론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산 항공기·자동차·반도체·농산물 등의 수입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당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수출을 어렵게 하는 방식 외에 중국 기업의 구매 물량 자체를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성과와 직접 연계돼 있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 2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무역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를 바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였다.
선물을 받아든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본 것"이라며 무역 불균형이 초래된 책임을 전직 미국 대통령들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 문제는 끝내 봉합되지 않았고 5개월 뒤 미·중 양국이 상대를 향해 500억 달러 규모의 관세폭탄을 교차 투척하는 무역전쟁으로 비화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겼던 돈보따리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방침이다.
양국이 체결한 투자무역 협정에는 보잉 항공기 200대 및 100억 달러 규모의 포드·GM 자동차, 수백억 달러 어치의 퀄컴 스마트폰용 반도체 구매는 물론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등도 포함돼 있다.
물론 엄청난 양의 구매 계약이 새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기존에 중국과 미국 기업 간의 논의 사항을 정리해 2500억 달러라는 '숫자'를 내세운 셈이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가 많아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구매 물량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철회할 수도 있다.
실제 중국 국유기업인 동방항공은 올해 283억 위안(약 4조8000억원)에 달하는 보잉 항공기 도입 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마쉬룬(馬須倫) 동방항공그룹 회장은 전날 기업설명회(IR)에서 "미·중 협상 결과에 따라 항공기 구매를 위한 다음 행보를 결정하겠다"며 중국 정부의 입김이 반영된 조치임을 드러냈다.
포드와 GM 등 중국에 합작 형태로 진출한 미국 기업들도 양국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한국 기업이 겪었던 후폭풍과 유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홍콩 대공보 등은 "중국은 미국 농민들의 최대 고객으로 중국이 꺼내들 칼도 (농장 지대인) 미국 중서부를 겨냥해야 한다"며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 축소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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