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월 25일 상해에서, 이동녕, 이시영, 김구, 안창호, 조완구, 박찬익 등이 창당했다. 한국독립당은 비사회주의계열 인사들이 조직한 정당이었으며, 독립투쟁전선 통일과 지방파벌 청산을 목표로 삼았다. 조소앙이 제창한 삼균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채택하고, 이동녕, 안창호, 김두봉, 안공근, 조완구 등이 정강․정책을 기초했다. 당 최고책임자인 이사장에 이동녕, 당무이사에 김구와 조소앙이 선출되었다.
1933년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 요구가 높아지면서 민족혁명당으로 합쳤으나, 약산 김원봉을 비롯한 좌파계열 인사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급격히 좌경화되자, 조소앙 등이 탈당해 그해 가을 한국독립당을 재건했다. 하지만, 당세가 약해 김구의 지원으로 당 간판을 유지하는 형국이었다.
한편, 백범은 1935년 11월 항저우에서 한국국민당을 창당했다. 이사장은 김구가 맡았으며, 이동녕, 이시영, 조성환, 조완구, 안공근, 엄항섭과 수당의 남편 김의한 등이 참여했다. 수당 역시 입당했으며, 이것이 그가 정당에 적을 둔 최초의 일이었다.
한국국민당은 한국국민당청년단(韓國國民黨靑年團)과 한국청년전위단(韓國靑年前衛團)의 두 외곽조직을 두고, <한민(韓民)>과 <한청(韓靑> 두 잡지를 발행했다. 백범과 장제스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국국민당은 중국국민당과 초기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좌파계열을 제외한 중국 내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이었다.
좌우파의 통합을 모색하는 한국혁명운동 통일 7단체회의가 1939년 8월 27일 쓰촨성(四川省) 치장(綦江)에서 개최되고, 한 달 뒤 전국연합진선협회(全國聯合陣線協會)가 창립했으나, 이념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다. 이에 따라, 1940년 4월 한국국민당은 민족주의계열의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과 합당해, 백범을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통합 한국독립당을 창당한다.
한국독립당은 일제강점 마지막 시기 임시정부의 여당이었고,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 및 단독정부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백범이 암살당하면서, 위기를 맞은 한국독립당은, 한국전쟁 중 당 지도부 다수가 납북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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