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정성으로 빚어진 숲다운 숲에는 수많은 생명도 깃들었다.
52만㎡(15만7000여 평) 거대한 숲은 고요하다.
어두운 숲, 싱그러운 햇살 한 줄기 비추고 바람이 살랑이니 자연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댓잎은 바람에 서로를 스치며 초록 물결을 일으키고 수령 100~300년 된 금강송은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아홉산 숲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닭 무리와 고양이 산토끼, 고라니, 꿩, 멧비둘기들도 잔잔한 이 소리에 기분 좋게 노닐고 족제비, 오소리, 반딧불이도 푸른 이끼에 잠시 기대어 행복함을 느낀다.
◆위기 속에서 굳건히···자리를 보전한 아홉산 숲

아홉산 숲은 어딜 가도 좋은 포토스폿이 된다. 아홉산 숲의 탐방로에 수놓인 맹족죽 숲.[사진=기수정 기자]
1600년대, 남평 문 씨의 일가는 철마면 웅천 미동마을(곰내 고사리밭)에 정착해 육림(育林, 나무를 심거나 씨를 뿌려 인공적으로 나무를 가꾸는 일)을 시작했다.
일가는 이곳에 대숲과 금강송·편백숲·편백·참나무 등을 심고 정성 들여 가꿔 나갔다.
그러던 중 문 씨 일가는 '일제강점기'라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집안의 쇠젓가락까지 탈탈 털어가던 일제였기에 아홉산 숲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홉산 숲 초입에 자리한 목련나무[사진=기수정 기자]
"조상들 제사를 어떻게 모시느냐"며 대성통곡하는 이들의 모습을 본 순사들은 놋그릇만 챙겨 슬그머니 도망치듯 집을 나갔단다.
문씨 일가의 뛰어난 기지 덕에 보전돼 온 아홉산 숲은 기장군이 ‘테마가 있는 임도’를 내걸고 홍보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겪었다.
홍보 덕에 행락객들이 몰려들었고 목숨처럼 지켜낸 아홉산 숲은 행락객들의 음주·가무, 대나무와 죽순 훼손 등 큰 아픔을 겪으면서 점점 멍들어갔다.
문씨 일가는 결국 1억5000만원을 들여 아홉산 숲에 철조망을 치고 다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숲을 지키기 위해 고민 끝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어렵게 지켜낸 자연, 보전을 가장 중요하게

관미헌에서 만난 야상 황매[사진=기수정 기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적 자연을 사람들이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지만 자연 보존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아홉산 숲의 주인은 고민 끝에 숲의 일부만 조금, 살포시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2003년 3월 숲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학술적 목적만 민간의 입장을 허락했고 10여 년이 지난 2015년 3월부터 일반에 아홉산 숲 일부를 공개했다.

빼곡히 들어선 맹종죽이 가히 장관인 아홉산 숲[사진=기수정 기자]
과거에는 산주(山主) 일가가 살았다는 이곳은 지금은 아홉산 숲의 직원들 일부가 거주하며 숲을 관리하고 있다.

곱게 핀 진달래꽃[사진=기수정 기자]
천천히 둘러보는 데는 1시간 반여의 시간도 부족하리만큼 다양한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홉산 숲 맹종죽은 압권이다.

아홉산 숲 평지대밭[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 평지대밭[사진=기수정 기자]
<대호>, <협녀, 칼의 기억>에서 웅장한 대숲이 나오는 장면이 모두 이곳 아홉산 숲에서 촬영됐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입장료는 1인당(5세 이상) 5000원이다.

금강송 군락지. 400년 수령의 금강송의 자태를 만날 수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금강송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여행객.[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 앞 벚나무. 막 피기 시작한 벚꽃과 저멀리 석양이 아련하게 느껴진다.[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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