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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의 여행 in]숱한 위기 이겨낸 숲… 원시적 자연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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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기자
입력 201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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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평 문씨 일가, 임진왜란·일제 강점기에도 개방하지 않고 보전

  • 국내서 희귀한 구갑죽·높이 자란 맹종죽 장관… 운 17시까지

부산 최고의 청정지역, 기장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 한 집안이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숲이 있다. 이름하여 아홉산 숲이다.

오랜 세월 정성으로 빚어진 숲다운 숲에는 수많은 생명도 깃들었다.

52만㎡(15만7000여 평) 거대한 숲은 고요하다.

어두운 숲, 싱그러운 햇살 한 줄기 비추고 바람이 살랑이니 자연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댓잎은 바람에 서로를 스치며 초록 물결을 일으키고 수령 100~300년 된 금강송은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사각사각 부딪히는 초록 잎들의 기분 좋은 소리를 듣고 분홍빛 진달래의 얇은 꽃잎들도 수줍은 몸짓으로 왈츠를 춘다.

아홉산 숲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닭 무리와 고양이 산토끼, 고라니, 꿩, 멧비둘기들도 잔잔한 이 소리에 기분 좋게 노닐고 족제비, 오소리, 반딧불이도 푸른 이끼에 잠시 기대어 행복함을 느낀다.

◆위기 속에서 굳건히···자리를 보전한 아홉산 숲
 

아홉산 숲은 어딜 가도 좋은 포토스폿이 된다. 아홉산 숲의 탐방로에 수놓인 맹족죽 숲.[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에서 살아가는 이 작은 생명의 큰 행복은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해방과 전쟁을 거치고 또 21세기에 들어서서도 결코 숲을 개방하지 않은 한 집안의 고집 덕이었다.

1600년대, 남평 문 씨의 일가는 철마면 웅천 미동마을(곰내 고사리밭)에 정착해 육림(育林, 나무를 심거나 씨를 뿌려 인공적으로 나무를 가꾸는 일)을 시작했다.

일가는 이곳에 대숲과 금강송·편백숲·편백·참나무 등을 심고 정성 들여 가꿔 나갔다.

그러던 중 문 씨 일가는 '일제강점기'라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집안의 쇠젓가락까지 탈탈 털어가던 일제였기에 아홉산 숲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홉산 숲 초입에 자리한 목련나무[사진=기수정 기자]

어느 날 일본 순사들은 아홉산 숲 뒷산의 나무를 베기 위해 이곳에 들이닥쳤다. 그때 문씨 일가 어른들은 반짝이는 기지를 발휘했다. 나무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놋그릇'을 숨겨놓은 후 순사들에게 빼앗겼다.

"조상들 제사를 어떻게 모시느냐"며 대성통곡하는 이들의 모습을 본 순사들은 놋그릇만 챙겨 슬그머니 도망치듯 집을 나갔단다.

문씨 일가의 뛰어난 기지 덕에 보전돼 온 아홉산 숲은 기장군이 ‘테마가 있는 임도’를 내걸고 홍보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겪었다.

홍보 덕에 행락객들이 몰려들었고 목숨처럼 지켜낸 아홉산 숲은 행락객들의 음주·가무, 대나무와 죽순 훼손 등 큰 아픔을 겪으면서 점점 멍들어갔다.

문씨 일가는 결국 1억5000만원을 들여 아홉산 숲에 철조망을 치고 다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숲을 지키기 위해 고민 끝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어렵게 지켜낸 자연, 보전을 가장 중요하게

관미헌에서 만난 야상 황매[사진=기수정 기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적 자연을 사람들이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지만 자연 보존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아홉산 숲의 주인은 고민 끝에 숲의 일부만 조금, 살포시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2003년 3월 숲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학술적 목적만 민간의 입장을 허락했고 10여 년이 지난 2015년 3월부터 일반에 아홉산 숲 일부를 공개했다.
 

빼곡히 들어선 맹종죽이 가히 장관인 아홉산 숲[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을 알리는 푯돌, 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 화사한 목련 나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고사리조차 귀하게 본다’는 뜻을 지닌 한옥 ‘관미헌(觀薇軒)’이 등장한다. 

과거에는 산주(山主) 일가가 살았다는 이곳은 지금은 아홉산 숲의 직원들 일부가 거주하며 숲을 관리하고 있다. 
 

곱게 핀 진달래꽃[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 초입,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희귀한 구갑죽과 100년이 넘은 배롱나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갑죽 마당을 지나 수령 400년 된, 푸른 금강송이 우뚝 서 있는 금강송 군락지, 봄을 알리는 진달래가 한가득 피어난 진달래 군락지를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둘러보는 데는 1시간 반여의 시간도 부족하리만큼 다양한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홉산 숲 맹종죽은 압권이다.
 

아홉산 숲 평지대밭[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에는 다섯 가지 대나무가 있는데, 맹종죽이 가장 많다. 대나무 가운데 가장 굵은 종인 이 맹종죽은 높게 자란 대나무 사이로 난 산길은 봄날의 운치를 더한다.
 

아홉산 숲 평지대밭[사진=기수정 기자]

맹종죽이 위용을 뽐내는 평지대밭은 가히 장관이다.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솟은 대나무는 아홉산 숲 제일의 명소다. 하늘을 가린 초록빛 대숲의 위엄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대호>, <협녀, 칼의 기억>에서 웅장한 대숲이 나오는 장면이 모두 이곳 아홉산 숲에서 촬영됐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입장료는 1인당(5세 이상) 5000원이다.

금강송 군락지. 400년 수령의 금강송의 자태를 만날 수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금강송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여행객.[사진=기수정 기자]

아홉산 숲 앞 벚나무. 막 피기 시작한 벚꽃과 저멀리 석양이 아련하게 느껴진다.[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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