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은 더욱 철저했다. 공장을 들어서거나 나올때마다 신원 확인은 물론 휴대전화기엔 카메라 촬영을 금지하는 보안스티커를 부착했다. 생산라인 견학을 오는 이들도 예외가 없었다. 휴대전화에 붙여진 보안스티커의 유무를 확인받고서야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공장 구조, 각종 설비, 자동화기기 등이 모두 영업 비밀에 따르는 것”이라며 “외부에 유출될 경우를 대비해 최대한 개방을 자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30년 노하우 공개해서는 안 돼”…中 유출 우려
그러나 최근 공장 설비 배치도와 공정 등 자료가 통째로 공개될 위기에 처해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입증을 이유로 삼성전자의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생산 시설의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를 잇달아 공개하라는 결정을 내리면서다.
이 보고서는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6개월마다 주요 사업장의 작업 환경을 살핀 결과가 담겨 있다. 삼성전자처럼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국내 대부분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장은 정부로부터 안전관리를 받는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에 필요한 정보로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라는 취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해당 자료에 각 공장의 생산라인 배치도와 장비, 설비, 주요 화학제품 등 핵심기밀이 담겨있어 난색을 보인다.
이에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 사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삼성전자가 그간 쌓아온 20~30년 노하우가 들어있어 중요하다”라며 “우리에게 중요한 영업기밀이니까 공개해서는 안 된다”라고 고용노동부의 공개결정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기술 유출로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는 초격차 전략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며 “우리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중국 등 경쟁국의 산업경쟁력을 올려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공장의 보고서 공개 논란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까지 이어졌다. 8일까지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0건 이상 접수됐다. 한 청원인은 “반도체 사업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국가 핵심기반 산업”이라며 “핵심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될 뿐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일자리 및 핵심 성장 동력 하나를 없애버리는 무책임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산업재해 최대한 협조,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막아야”
삼성전자는 산업재해 해결을 위해 최대한 협조하면서도 반도체 기술 유출은 없어야 한다는 기조로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30나노 이하 D램과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공정기술 등 7개 기술은 반도체 분야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돼있다. 이에 제조 기밀 유출을 우려해 외부인의 생산 라인 방문을 일절 금지해왔다. 국가 VIP는 물론 해외 유명 기업 인사가 삼성전자 사업장을 방문해도 제한된 시범 생산 라인만 공개할 정도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정부의 보고서 공개 결정을 막기 위한 행정절차에 돌입했다. 산업재해와 직접 관련이 없는 핵심 공정기술까지 중국 등 경쟁업체에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경기도 수원지법에 정보 공개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달 2일에는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기 전 고용노동부가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도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지난달 27일 집행 정지 신청을 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위한 유족들의 요청에는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지만, 영업 기밀과 관련한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제외해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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