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부지역은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등 주요 경제특구가 밀집한 곳으로 40년간 중국 개혁·개방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지역이다. 세계 관광지로 떠오른 ‘동양의 하와이’ 하이난다오(海南島), 홍콩과 마카오를 접하고 있으며 수륙교통의 요충지인 광둥(廣東)성, 전 세계 화교들의 고향인 푸젠(福建)성까지 이 지역들은 각자 특색을 기반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중국제조 2025’,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등 정부 주요 정책과도 밀접한 중국 남부지역은 금융·항공·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지도자들이 포진됐다. 기술개발, 환경개선 등 질적 성장으로 체질개선을 노리는 중앙 지도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정치·경제적 비중이 큰 광둥성 1인자에 자리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리시(李希)를 내정한 것은 그만큼 두 사람의 친분이 두텁다는 걸 의미한다.
리시 광둥성 서기는 시진핑이 지방근무 시절 만든 인맥 중 한 명으로, 이번 인사를 통해 5년 전 중앙후보위원에서 두 단계 뛴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1980년대부터 지속된 리 서기와 시 주석의 인연은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에서 시작됐고, 현재까지 30여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리 서기는 시중쉰 전 부총리의 동료인 리쯔치(李子奇) 간쑤(甘肅)성 서기의 비서를 지낸 경력으로 시진핑과 인연을 맺어 시자쥔(習家軍)으로 불린다. 그는 지난 2006~2011년 옌안(延安)시 서기 재임 당시 시진핑이 하방 생활을 했던 량자허(梁家河) 촌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하얼빈(哈爾濱) 이공대 박사 출신인 마싱루이(馬興瑞) 성장은 지난해 선전시 서기에서 광둥성 2인자로 승진했다. 산둥(山東)성 원청(鄆城) 출신인 마싱루이 취임으로 현지 출신이 대대로 광둥성장을 지냈던 30년간의 관례가 깨져 이슈가 되기도 했다.
마 성장 이전 5명의 광둥성장 중 예쉬안핑(葉選平), 루루이화(盧瑞華), 황화화(黃華華) 등 3명은 모두 현지 출신이다. 주썬린(朱森林), 주사오단(朱小丹) 등은 광둥 출신은 아니지만 관직 생활이 대부분 광둥 지역에 집중돼 현지 출신으로 분류한다.
마 성장은 하얼빈 이공대에서 교수를 역임하다 중국 우주 개발을 담당하는 군수기업 ‘중국우주과기집단공사’ 수장을 맡았다. 그는 공업신식화부 부부장, 국가우주국장, 국가국방과기공업국 국장, 중앙군사위 전문위원 등 요직을 거치며 유인우주공정, 달 탐사프로젝트를 총지휘한 ‘우주방’ 선두주자로 불린다.
또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의 인연으로 시 주석의 측근으로 평가된다. 펑 여사와 동향인 마 성장은 시진핑 집권 전부터 그와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윈난(雲南)성 성장에서 서기로 승진한 천하오(陈豪)는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새로운 중앙위원으로 선출돼 공산당 중앙정치국 진입에 성공했다.
장쑤(江蘇)성 출신인 천 서기는 상하이(上海)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며 시진핑과 인연을 맺었다. 2007년 시 주석이 상하이시 서기로 있을 당시 상하이시 총공회 주석을 지내 리지헝(李紀恒)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당서기 등과 함께 상하이 인연으로 분류된다. 2015년 시진핑이 윈난성 시찰에 나섰을 때는 그를 밀착 수행하며 대외적으로 시진핑의 측근임을 드러냈다.
시진핑 집권 2기의 지방지도부는 노동자, 교사, 해군병사, 기술자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천 서기는 장쑤성 하이먼(海門)시 제윈(介雲) 중학교에서 4년간 대리교사로 지낸 경험이 있다.
롼청파(阮成发) 윈난성장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출신으로 정치 이력이 풍부한 인물로 꼽힌다.
롼 성장은 ‘만청와(滿城挖, 도시 전체를 파헤친다)’, ‘미스터 불도저’로 불린다. 우한시장 재임 당시 대대적인 토목건축 공사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한시 서기로 승진했다.
1982년 공산당 당원이 된 그는 2011년까지 후베이성 부성장, 서기 등 주요 요직에 머물렀다. 2016년 고향을 떠나 윈난성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부서기, 부성장을 거쳐 지난해 성장 자리에 올랐다.
황스(黃石)시 시장을 거쳐 2004년 후베이성 부성장에 오를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로 비교적 빠른 승진 가도를 달렸고, 2013년 시진핑의 우한시 방문 때에는 일반 차관급으로는 이례적으로 고위관료 수행을 맡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두자하오(杜家毫) 후난(湖南)성 서기는 천하오 윈난성 서기와 함께 시진핑의 상하이 인연으로 꼽힌다. 두 서기는 “과잉공급, 과잉생산 해소 등의 공급 측 개혁을 강조해온 시 주석을 기꺼이 돕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출생지인 상하이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해 상하이시 상무위원, 푸둥(浦東)신구 서기를 역임했다. 그는 금융·교역의 중심지인 상하이 동부의 푸둥지구 개발을 총괄했다.
2013년부터는 헤이룽장(黑龙江)성, 후난성 부서기를 차례로 역임하다 2016년 8월에는 후난성 서기 자리에 앉는 등 고속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44년간 상하이에서만 일을 한 두 서기는 시 주석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상하이방’ 색채가 강한 인사로 분류된다. 상하이방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 출신 인맥을 뜻한다. 장쑤성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1979년 상하이로 자리를 옮긴 천 서기도 잔뼈가 굵은 상하이방 인물이다.
후난성 류양(瀏陽)시 출신인 쉬다저(許達哲) 후난성장은 하얼빈 이공대 기계공학과 기계제조를 전공하고 항공우주계에서 평생을 보낸 기술관료다.
쉬다저는 국가과학기술 진보 부문 특별상 2개, 부분별 과학기술 진보 부문 1등상 2번, 2등상 2개, 3등상 1개 등을 수상한 과학기술 인재다. 1995년과 1996년에는 ‘중국 국가 백천만인(百千萬人) 인재 프로젝트’의 1~2등급 인재로 뽑혔다. 2007년 2월에는 ‘중국 10대 인재’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쉬 성장은 중국공산당 당원이 된 1982년부터 줄곧 중국 항공과학계에서 몸담았다가 2016년 후난성 부서기 겸 성장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그는 중국품질협회 부회장, 중국과학기술산업화연구회 이사장, 중국컴퓨터자동측량·제어 기술협회 이사장, 중국항공우주공업질량협회 회장, 하얼빈 이공대 교수 등을 겸직하고 있다.
1981년 후난재경학원을 졸업한 장차오량(蔣超良) 당서기는 졸업 후 중국 농업은행 계획부에 입사해 금융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장 서기는 후베이(湖北)성 부성장을 거쳐 중국 교통은행 이사장, 중국국가개발은행 회장, 중국농업은행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중국 4대은행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명실상부한 금융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장 서기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인민은행 광저우 지점장을 지낸 장 서기는 당시 광둥성 부성장이었던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의 조력자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또 그는 350억 위안(약 5조9378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긴급 요청 및 투입해 금융위기 해결에 앞장서 왕 부주석의 눈도장을 받아내 '왕치산 인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탁월한 능력과 추진력은 장 서기의 장점이다. 2014년 지린(吉林)성 성장 당시 현지 노후 국영기업을 대폭 청산하고 생산력을 높이는 등 경제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전국 하위권을 맴돌던 지린성의 경제성장률은 대폭 상승해 평균을 웃돌았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2016년 후베이성 당서기로 승진했다.
2017년 후베이성 성장에 오른 왕샤오둥(王曉東) 성장은 중국 정치계에서 ‘오뚜기’로 불린다. 그는 한때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다소 늦은 나이인 56세에야 비로소 성장 직함을 달았다. 그의 뛰어난 처세술과 자기관리 능력은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다.
왕 성장은 1993년 당시 구이저우(貴州)성 전 서기인 류팡런(劉方仁)의 비서이자 심복으로 일하며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2004년 류 전 서기가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으면서 그의 정치적 생명이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행정력과 추진력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불식시켰고, 구이양(貴陽)시 서기 재임 당시 낙후된 지역환경 개선과 새로운 공업 발전안을 제시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후베이성 ‘창장(長江)보호 9대 행동지침’을 마련해 오수처리 시설을 증설하고 산림조경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등 중앙 정부의 환경보호 정책에 적극 협조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위웨이궈(于偉國) 푸젠성 당서기는 시 주석이 푸젠성 성장에 있을 때 샤먼(廈門)시 부시장 등을 지낸 측근으로 시자쥔으로 분류된다.
위 서기는 헌법 법전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 최초의 성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2016년 1월 푸젠성 12기 인민대표대회 4차 회의 폐막식에서 왼손을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법전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 주먹을 쥔 상태에서 성장 취임 선언문을 낭독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2살 때까지 화학공장과 방직공장 등의 생산 노동자로 지내다 대학입시가 부활한 이듬해인 1979년 시험에 합격해 인민대 중문과에 입학했다.
1983년 졸업 후 공산당 핵심부서인 중앙서기처에서 정식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로 중앙서기처의 연구실에서 학술활동을 했다. 1995년 푸젠성 샤먼시장 보좌관으로 실무능력을 쌓기 시작했고, 샤먼시 서기, 푸젠성 성장을 거쳐 2018년 푸젠성 서기로 승진했다.
상하이시 출생인 탕덩제(唐登杰) 성장은 기계공학 전문가이자 자동차·무기통(通)이다. 1986년 퉁지(同濟)대 기계공학과를 전공하고 상하이기차(SAIC)에 입사한 그는 자동차 생산 부서에서만 10년 넘게 자동차 부품을 연구했다.
탕 성장은 2003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상하이시 부시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 받았다. 8년간 상하이시 부시장을 역임한 그는 2011년 중국무기장비그룹 이사장으로 부임해 무기 생산효율 향상과 대량의 수출 계약 성사로 4400억 위안의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재직기간 동안에는 8년 연속 국영기업 최고경영자(CEO) 상을 휩쓸기도 했다.
특히 탕 성장은 시 주석이 상하이시 서기로 재직할 당시 상하이 부시장을 지내 시진핑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공업신식화부 부부장, 중국국가항천국(CNSA) 국장, 국가국방과학기술공업국 국장 등 요직을 겸직한 그는 올해 1월 푸젠성장으로 승진했다.
푸젠성 취안저우(泉州) 출신인 류츠구이(劉賜貴) 하이난(海南)성 서기는 중국 공산당 3대 파벌 중 하나인 공청단 출신이지만 푸젠성에서 쌓은 시진핑 주석과의 인연으로 시자쥔으로도 분류된다.
류서기는 지난 1973년 푸젠성 사오우(邵武)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푸젠성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했다. 그는 1997년 푸젠성 공청단 부서기로 근무하면서 당시 푸젠성 부서기로 재직 중인 시 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푸젠성 해양어업국 국장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류 서기는 푸젠성에서의 오래 경력을 통해 2011년 국가해양국 국장 자리에 올라 실무경험을 쌓았다. 2014년에는 하이난성장으로 파격 승진됐는데 이는 당시 하이난성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장딩즈(蔣定之)를 내치기 위한 작업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장 전 성장은 부정부패 혐의로 수감중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의 심복이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선샤오밍(沈晓明) 성장은 수많은 중국 정치인들 중에서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1984년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20년 가까이 소아과 전문의로 근무하며 아동 환자를 위한 치료법 개발에 헌신했다.
그가 의사가 된 사연은 다름 아닌 선천적으로 발달 장애를 갖고 태어난 여동생 때문이다. 선 성장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그의 여동생은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는 열악한 중국 의료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의대에 지원해 의료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 성장은 2006년 상하이 교통대 상무 부교장을 역임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8년에는 상하이시 부시장으로 승진해 혁신기술 개발단지 조성에 앞장섰다. 2016년 중국 교육부 부부장을 거쳐 2017년 하이난성장으로 공식 임명됐다. 그는 하이난성의 의료체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로 자신의 의학 노하우를 현지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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