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은 후 딸과 함께 자살을 택한 증평 모녀사망사건. 엄마와 딸은 죽은지 약 넉달만에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발견됐다.
집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혼자 살기 너무 어렵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정씨의 죽음은 본인이 스스로 선택했다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생존권이 박탈당한 셈이다. 생계를 비관한 가장의 영아살해를 동정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지난 9일 알려진 증평모녀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부모가 오죽했으면 자식을 죽이고, 본인도 죽었겠느냐”란 동정의 시각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본인이 죽으면 자녀들의 삶도 불행할 것’이라는 판단은 오만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의 생명을 박탈할 권리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10일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경제적 원인이나 아동학대, 우울증 등 각종 원인으로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존속살해 사건이 꾸준히 늘고 있다. 대검찰청 ‘2016년 범죄분석통계’ 현황을 보면 지난해 발생한 살인은 948건으로 이 가운데 존속살해는 55건 발생했다. 이는 전체 살인 사건의 5% 수준인데, 같은기간 미국(2%), 영국(1%) 등에서 발생한 존속살인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형법 250조에 따르면 존속살해(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경우)의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일반 살인죄보다 형량이 높다. 반면 비속살해(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의 경우 일반 살인죄와 같다.
전문가들은 비속살해가 친부모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물리적, 심리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만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성국(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박사는 “자녀살해가 존속살해에 비해 중죄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는 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영향이 크다”며 “사법부의 형량에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또 평생 그런 상처를 안고 갈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가해자, 즉 부모에 대한 입장이 반영된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관계자도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소유한다는 가부장적인 인식 때문에 자식살해를 부모살해보다 큰 죄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는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취약한 존재기 때문에 약자에 대한 범죄인 만큼 가중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속살해에 대한 낮은 처벌수위도 문제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문제다. 김희경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전 인권정책연구소 이사)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비속살해에 대해 지나치게 온정주의 시각을 갖고 있는 언론을 질타했다.
김 차관보는 "부모자식 동반자살 사건을 개인의 비극에만 초첨을 맞추고 '오죽했으면...'이라는 반응을 드러내는 언론,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며 "'일가족 동반자살'대신 '자녀살해 후 부모 자살'로 표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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