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적자 해소를 위한 미국의 사실상 원화절상 압력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경제·부동산 전문가들은 원화절상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대표적 자산시장인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버블형성과 붕괴 과정을 거치며 이른바 돌아올 수 없는 20년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본지는 이같은 상황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을 지면으로 초청해 '원화 강세에 따른 부동산 시장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남영우 나사렛대학교 국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 장희순 강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가 이번 지상좌담에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원화 강세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진단을 내놨다. 다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대출규제 강화로 인해 주택시장 하방압력성이 커진 만큼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수출 등 거시경제 전반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 "일본의 버블붕괴식 급격한 주택가격 하락은 없을 것"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 흐름이 보통 금리 인상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분위기에서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인상이 필연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또 원화 강세와 기준금리 인상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심교언 교수는 "최근 원화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금리인상으로 국내에서도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다보니 향후 부동산시장에 하방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면서도 "낙관적으로 보자면 원화강세 흐름이 현 상황보다 추가적으로 더 크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희순 연구원은 "현재 환율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환율정책과 국제협약 재협상 결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북 리스크가 감소하고 미국의 자국 중심 환율정책 등으로 원화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노 연구원은 그러면서도 "단기간 1000원 이하로 떨어질 경우에는 경제적 공포가 확산되고 경기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한국의 환율 조작이 제한되더라도 1000원 내외 최저한도는 유지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과거 플라자합의 이후 부동산 폭락을 겪은 일본 사례와 같은 극단적인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남수 팀장은 "일본은 1991년 부동산 버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금리를 단기간 급격하게 인상했기 때문에 시장이 완전히 교란돼 폭락이 발생했던 것"이라며 "이 같은 사례에 대한 학습효과로 과도한 금리인상 등 같은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희순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통화 강세 현상은 원자재 가격하락과 수입 증가, 실질소득 증가, 물가 안정 등을 불러온다"면서 "하지만 일본과는 부동산 금융 및 거래 규제, 금리 인상 등에 외부 변수가 다른 만큼 부동산 폭락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희순 교수 역시 "과거 일본 상황과는 다르게 현재 국내에는 대출 규제가 선제적으로 강화돼 있어 버블 붕괴 같은 극단적인 현상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전반적으로 부동산시장이 하향세이기 때문에 이 같은 기조가 당분간 유지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당 260엔에서 1988년 120엔으로 100% 이상 엔화가 평가절상됐다. 그 사이 금리를 급격히 낮추면서 6대 도시의 상업용 지가는 플라자 합의 이후 5년간 2.5배 이상 치솟았다. 1990년까지 형성된 버블은 이후 금리인상 과정에서 급격히 꺼졌다. 1990년대 중반 집값은 30% 가량이 떨어졌고, 다시 5년 뒤에는 반 토막이 났다.
한국은 그동안 부동산 경기를 떠받쳐온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는 단계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1.25%대의 저금리를 유지하다 작년 11월 1.5%로 0.25%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가 인상된 것은 2011년 6월 이후 6년5개월만이다. 시중은행들도 잇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거시경제 불안 요소…장기적으로는 악형향
다만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거시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어 청약·거래·대출 규제로 허약해진 부동산 시장에도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남수 팀장은 "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고 보유세제 개편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등 전체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요소가 많은 상황"이라며 "하반기에도 약세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영우 교수는 "환율과 금리가 급격하게 변동하지 않는 한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서도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 수출 불안 등 내수 경기 악화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율·금리 변동과 부동산 규제 강화 등으로 수익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수요자들은 보수적이고 안전한 실수요 중심 부동산 참여를 조언했다. 이남수 팀장은 "매수자 우위시장으로 변동된 만큼 하반기까지 분위기를 살펴보고 시장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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