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이 있게 만든 국민들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
◆반민특위 파괴하면서까지 친일파 적극 비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행한 가장 큰 실정이자 죄악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친일파를 적극 비호한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소장파 의원들이 주도하는 국회는 친일파 처벌법을 제정했고 국회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치돼 친일파들을 대량으로 체포해 기소했다.
이런 반민특위 활동을 국민들은 적극 지지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친일파들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지지기반이었다. 특히 일제 시대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살인적으로 고문한 친일경찰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적과 좌파 세력을 제거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였다.
반민특위가 노덕술 같은 친일경찰들을 체포해 기소하기 시작하자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반민특위는 정면충돌했고 마침내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와해시켰다.
이로 인해 그 후 수십년 동안 친일파들은 한국 사회 각계각층을 장악하며 부와 권력을 누렸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빈민층으로 전락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
◆국민보도연맹 등 수만-수십만명 양민 학살
양민 학살도 4·19 혁명이 있게 한 이승만 정권의 대표적인 죄악이다.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양민 학살 규모는 제주 4ㆍ3 사건이나 한국전쟁 같은 비상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두환 정권 등 군사독재정권들이 자행한 양민 학살 규모를 훨씬 능가한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 전쟁 기간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수 만명에서 수십만명 이상의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했다. 국민방위군 사건 때는 군의 부정으로 1000명 이상이 죽었다. 이 외에도 거창양민학살 사건 당시 수백명의 죄 없는 양민들을 학살하는 등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양민 학살 사례는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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