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살인소설’은 보궐선거 시장 후보로 지명되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은 ‘경석(오만석 분)’이 유명 정치인인 장인의 비자금을 숨기기 위해 별장을 찾았다가 수상한 청년 ‘순태’(지현우 분)를 만나며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배우 지현우(34)가 맡은 순태 역은 “표현 방법이 매우 까다로운” 캐릭터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고 의뭉스러우며 모호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연기자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고 다가가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얘는 뭐지?’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순태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찼어요. 잘 모르겠더라고요. 촬영하면서 대사를 반복적으로 치고 시나리오를 열 번 이상 보니까 디테일한 부분이 보였어요. 집중해서 봤을 때 느끼는 쾌감이 있었다고 할까요? 순태의 입장에서 아주 미세하게 변화하는 감정 등을 파고들고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저는 순태가 김진묵 감독님 같다고 생각했어요. 8년 동안 작품을 준비하고, 배우들이 연기하고, 작품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이 (순태의 감정과) 비슷했죠. 그래서 연기할 때도 감독님의 표정 같은 걸 많이 살폈어요.”
김 감독이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듯, 순태 역시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판’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감독님께 ‘연기할 때 (순태가) 어떤 감정이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순간 눈이 반짝거리면서 행복한 미소가 싹 번지는 거예요. 8년간 준비해왔던 것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는 것 같았어요. 그 찰나의 감정이 꼭 순태의 모습 같더라고요. 뭐랄까? 일반 사람 같지 않은 묘함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하나…. 하하하. 감독님께 말은 안 했는데 어떤 표정이나 행동 같은 것들을 (순태 캐릭터에) 많이 녹였죠.”
순태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자료도 살펴보았다고. 그는 순태의 레퍼런스이자 오마주인 장면들을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극 중 순태가 강에 시체를 던지는 모습은 일본영화 ‘비밀’을,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은 주드로·마이클 케인의 영화 ‘추적’을 참고했죠. 그런 오마주들이 있었어요. 다큐멘터리나 뉴스 등을 참고하기도 했었죠.”
뭐든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진짜’가 되고자 노력하는 지현우답게 그는 사회 문제들을 가까이하고 직접 뛰어들기까지 했다고.
“이전에는 정치 문제 등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연기를 위해서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죠. 촛불시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청문회 등이 (연기에) 도움을 줬어요. 함께 분노하고 감정이 올라오는데 ‘이런 게 순태의 마음이겠구나’ 싶었던 거죠.”
특히 그는 지난해 “세상을 바꾼” 촛불집회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송곳’을 찍을 때도 직접 마트를 찾아다니면서 노조 하시는 분들을 보고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타인의 시선 등을 관찰했어요. 촛불시위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도 함께 하면서 그들이 왜 분노하는지 느껴보려고 했죠. 연기로 그런 걸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느낌을 모르면 표현을 못 하니까요.”
‘배우’ 지현우의 시작점은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였다. 뭇 여성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던 연하남 캐릭터는 지현우에게 인기를 선물했지만 동시에 한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고정된 이미지를 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고 장르와 캐릭터를 개척해나갔다. 희석되지 않을 것 같았던 ‘올드미스 다이어리’ 속 연하남 이미지는 어느새 흐려지고 ‘배우’ 지현우만이 남게 됐다.
“‘살인소설’ 전까지 다섯 작품 정도 멜로가 없는 작품을 해왔어요. 이전 작품들이 없었다면 순태 역시 만나기 어려웠겠죠. ‘앵그리맘’, ‘송곳’, ‘원티드’, ‘도둑놈 도둑님’으로 이어지면서 억울함, 분노를 학습하게 됐어요. 그런 것들이 제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겠죠. 그래서 ‘살인소설’ 이후 만나게 될 작품에 대한 기대도 있는 거고요.”
지현우는 이 ‘변화’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며 성격도 변했고 관심사들도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작품을 보는 눈도 바뀌는 것 같아요. 제가 바뀐 거겠죠? 20대 때는 주야장천 로맨틱 코미디만 해왔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폭을 넓힐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 시기기도 하고요. 점점 더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살인소설’ 이후 살피고 있는 차기작 역시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낸 작품이 될까?
“드라마 장르를 연기하고 싶어요. 공감할 수 있는 내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무슨 마음인지 알겠다’ 하는 것들이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보면서 연애할 때의 느낌을 받곤 해요. 그런 상상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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