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이 있었다. 회담장에서 생생하게 보여진 김정은 위원장의 행동과 육성은 폐쇄적인 은둔 왕조의 계승자라기에는 너무나 과감하고 솔직했다.
누구는 '쇼'라고도 하지만, 그것이 쇼라면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아도 과하지 않을 명연기다. 그 어떤 연기도 현실보다는 사실적일 수 없다.
김 위원장이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연기라서가 아니라 북한 내부의 결정과 열망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북한은 해당 회의에서 “ '핵·경제 병진노선'이 승리로 종결되었으며, 당과 국가의 전반 사업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지향하도록 하고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결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결에 대하여는 상반된 의견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핵 무력 완성' 주장이라는 해석이 주류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는 당과 국가 전반 사업의 사회주의 경제건설로의 전환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선언의 핵심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결도 이와 연관지어 해석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경제건설로의 전환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40년 전 중국 공산당의 11기 3중전회를 떠올려야 한다. 이 자리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결정되었는데, 당시 개혁 선언의 원어는 개혁·개방이 아니라 '전체 당 사업의 중점과 전국 인민 관심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의 전환'이었다.
약간의 표현의 차이를 제외하면 조선노동당의 결정과 중공 11기 3중전회의 선언은 기본적으로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개혁·개방을 선언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중국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당 사업 중심 전환'의 의미와 그것이 왜 개혁·개방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의 대외개방을 이끌었던 국제적 환경과 정세에 대한 인식 변화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은 혁명 이후 변화된 체제에서 경제건설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인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부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날 때까지 중국은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가지고 인공위성도 쏘아 올렸지만 인민은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해서는 경제발전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했다. 이에 중국은 기존의 방식을 개혁하고 서방의 자본과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개방을 택했다.
중국의 개방에는 국제정세와 전쟁·평화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전제됐다. 1970년대 말까지 중국은 단시일 내에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봤고 전쟁의 위험이 소련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미·중 관계 정상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미·중 관계의 정상화가 중국 개방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1979년 1월 1일의 미·중 수교와 거의 비슷한 시기인 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결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선노동당의 결정으로 돌아가 보자. 경제건설로의 노선 전환은 인민생활의 개선을 위한 정상적인 국가로의 전환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대외 개방·개혁과 더불어 전쟁 위험의 종식과 평화적인 환경이 필수적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이러한 결정은 북한이 안전보장을 위해서 뿐 만 아니라 내부적 발전을 위해서도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와 같은 남북과 북·미 간 획기적인 관계 개선이 필요함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를 위한 내부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한 행보였다.
자신들은 변화의 필요와 의지가 있으니 한국과 미국이 그 조건을 충족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은 안전을 위한 것이었는데, 핵이 보장하던 안전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상화로 보장한다면 경제발전을 위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준 것이 바로 승리와 종결선언을 통한 '핵·경제 병진노선'의 폐기이다. 여기에 인민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적절한 가격을 쳐준다면, 허리띠를 졸라매던 인민들에게 핵 포기를 설득할 명분도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한의 4월 20일 선언은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로 전환하는 북한식 개혁·개방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핵이 없었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관계 개선이 무망했을 것이므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핵·경제 병진노선'이 승리로 종결되었다고 선언할 만큼 제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전환된 노선의 실현 여부와 북한 핵 역할의 진정한 종언은 아직 확신하기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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