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만든 때는 1999년이다. 과거에도 CIO가 임기를 못 마친 채 낙마하는 사례는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둔 적은 없었다. 전임자가 물러나면 늦어도 2개월 안에는 새 CIO를 뽑았다. 우리 노후를 책임질 돈 620조원을 굴리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CIO 공모는 여느 때와 달랐다. 과거보다 지원자 수가 크게 줄었다. 기금운용에만 전념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커졌다. 심지어 CIO 자리를 '독이 든 성배'로 비유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인물이 잇달아 하마평에 올랐지만 모두 고사했다.
물론 전에도 국민연금은 정치적인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절차상으로는 공모를 거쳐 CIO를 뽑지만 으레 코드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국민연금을 유례없는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정부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부당하게 압박했다고 봤다.
그렇다고 안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기금운용본부를 권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독립성을 보장해줄 조치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국민연금을 쥐락펴락하는 최상위 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다.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위에서 세운 전략대로 집행할 뿐이다. CIO 선임마저 복지부 장관 승인을 거쳐야 한다. 독립을 보장할 장치가 전혀 없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은 이유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얼마 전 기금위를 열어 "신뢰 회복을 위해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참 전에 했어야 할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구두선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새 CIO 역시 끊임없이 이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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