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우리은행, 카카오뱅크, K뱅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이어 모바일 송금 전문 회사 지머니트랜스까지 내로라하는 금융회사에서 잘나갔던 금융맨이 돌연 사표를 던지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14일 아주경제 본사에서 만난 조성연 우즈베키스탄 코리아 트레이드(Oz Korea Trade) 대표는 지난 1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홀로서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을 기회의 땅으로 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장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나라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한 우물을 파지 못 하는 '갈지자 인생'이라 말했다. 그가 조경학과를 나와 처음 입사한 곳은 색채설계·연구기관인 한국색채연구소다. 그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경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아주대 경영대학원(MBA)에서 본격적인 금융공부를 시작했다.
조 대표의 호기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은행에 입사한 뒤에도 단조로운 삶을 거부했던 그는 "입사 후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체의학 분야인 카이로프랙틱도 공부하면서 의과대학의 시체 해부학 수업도 들었다"며 "동료들이 도시락 싸서 말릴 만치 지독하게 힘들다고 소문난 본부 상품개발부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상품개발자는 예금, 대출, 외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기획한다. 조 대표는 여기서 4년간 홀로 외환상품 기획을 도맡았다. 그는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는데 그 과정에서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했고, 회사 계단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일보 여러 번 겪었다.
조 대표가 만든 금융상품들이 하나둘 인기를 끌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내가 개발한 '다이렉트 해외 송금서비스'는 외국인 고객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일부 영업점에서만 이 서비스를 시행하다가, 전체 영업점으로 확대하는 등 우리은행의 대표 상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만든 위안화 상품이 기존의 위안화 예금실적을 20배 이상 증가시켰다"며 "카카오 해외송금 등 해외결제와 관련해 또렷한 경력을 만들어 갔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년간 쌓인 민원 사례를 모두 찾아내 이를 분석했다. 고객들을 자주 만나는 영업점 직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서비스에 반영했다"면서 "직원들도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면서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상품개발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사람들 눈에는 전문가로 보였지만, 상품이 아무리 히트를 쳐도 승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석굴암 짓는 일이 끝나면 당연히 불국사도 뚝딱 지어야 하는 이름 없는 석공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조 대표는 기업 간 거래(B2B) 컨설팅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달 4월 우즈베키스탄 코리아 트레이드와 우즈베키스탄 현지 회사 더 다니엘 트레이드(The Danial Trade)의 법인등록을 마쳤다.
우즈베키스탄은 천연가스·금 등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점진적인 경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꾸준히 증가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2002년 이후 매년 최소 4%~7% 증가했다.
그는 "신흥국은 경제발전 초기 10년간만 투자하기 좋다. 이 시기가 지나면 기존의 우대제도가 점차 사라지고, 인건비도 많이 올라 투자금액 회수가 어렵다. 중국이 대표적"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은 지금 문이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금융회사 경력을 활용해 우즈베키스탄 현지 은행과 국내은행 간 외국환 거래업무를 돕고 있다. 또 그는 시장조사, 홍보, 판매 등 수출상품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행사도 운영한다.
조 대표는 "한국기업과 우즈베키스탄기업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4일 아주경제 본사에서 만난 조성연 우즈베키스탄 코리아 트레이드(Oz Korea Trade) 대표는 지난 1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홀로서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을 기회의 땅으로 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장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나라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한 우물을 파지 못 하는 '갈지자 인생'이라 말했다. 그가 조경학과를 나와 처음 입사한 곳은 색채설계·연구기관인 한국색채연구소다. 그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경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아주대 경영대학원(MBA)에서 본격적인 금융공부를 시작했다.
조 대표의 호기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은행에 입사한 뒤에도 단조로운 삶을 거부했던 그는 "입사 후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체의학 분야인 카이로프랙틱도 공부하면서 의과대학의 시체 해부학 수업도 들었다"며 "동료들이 도시락 싸서 말릴 만치 지독하게 힘들다고 소문난 본부 상품개발부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상품개발자는 예금, 대출, 외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기획한다. 조 대표는 여기서 4년간 홀로 외환상품 기획을 도맡았다. 그는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는데 그 과정에서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했고, 회사 계단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일보 여러 번 겪었다.
조 대표가 만든 금융상품들이 하나둘 인기를 끌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내가 개발한 '다이렉트 해외 송금서비스'는 외국인 고객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일부 영업점에서만 이 서비스를 시행하다가, 전체 영업점으로 확대하는 등 우리은행의 대표 상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만든 위안화 상품이 기존의 위안화 예금실적을 20배 이상 증가시켰다"며 "카카오 해외송금 등 해외결제와 관련해 또렷한 경력을 만들어 갔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년간 쌓인 민원 사례를 모두 찾아내 이를 분석했다. 고객들을 자주 만나는 영업점 직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서비스에 반영했다"면서 "직원들도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면서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상품개발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사람들 눈에는 전문가로 보였지만, 상품이 아무리 히트를 쳐도 승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석굴암 짓는 일이 끝나면 당연히 불국사도 뚝딱 지어야 하는 이름 없는 석공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조 대표는 기업 간 거래(B2B) 컨설팅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달 4월 우즈베키스탄 코리아 트레이드와 우즈베키스탄 현지 회사 더 다니엘 트레이드(The Danial Trade)의 법인등록을 마쳤다.
우즈베키스탄은 천연가스·금 등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점진적인 경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꾸준히 증가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2002년 이후 매년 최소 4%~7% 증가했다.
그는 "신흥국은 경제발전 초기 10년간만 투자하기 좋다. 이 시기가 지나면 기존의 우대제도가 점차 사라지고, 인건비도 많이 올라 투자금액 회수가 어렵다. 중국이 대표적"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은 지금 문이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금융회사 경력을 활용해 우즈베키스탄 현지 은행과 국내은행 간 외국환 거래업무를 돕고 있다. 또 그는 시장조사, 홍보, 판매 등 수출상품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행사도 운영한다.
조 대표는 "한국기업과 우즈베키스탄기업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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