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 파기를 선언한 가운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이번 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현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다시 타격을 받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기불편한 유럽···독자 협정 준수 역시 난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뒤부터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2015년 미국과 함께 협정에 참여했던 프랑스·영국 등은 미국의 잔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 외무부 장관인 보리스 존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협정에 잔류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탈퇴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독일·영국은 미국이 이번 협정에서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핵확산억지 체제가 위기에 놓였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유럽 동맹국들의 충고를 무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에 핵협정에서 합의된 경제제재 중단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JCPOA의 핵심은 이란의 핵관련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유럽연합(EU)과 미국, 그리고 유엔이 부과해왔던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란에 대한 제재가 즉각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지만, 단계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이란의 석유산업, 항공, 귀금속 무역 등 이전에 제재가 가해졌던 분야에 대한 제재가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은 전했다.
◆유럽과 이란만 핵협정 준수하는 것은 힘들 듯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서명국은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가 다시 시작될 경우 이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도 피해가 가는 만큼 투자 기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 이란과 EU가 핵 합의를 유지하려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상대국들은 이란의 석유 수출을 계속 허용할 것이며, 외국 기업의 대(對)이란 투자 및 무역교류를 촉진하는 등 핵합의 당시 약속한 경제적 혜택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고려하면, 미국 탈퇴의 파장은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의 이란 핵협정 파기가 가시화되면서 최근 몇 달 동안 이란 리얄화 가치는 연일 하락,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란은 보유하고 있는 핵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안전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핵협상 요구 사항을 충분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 미국의 압력이 지나치게 계속될 경우 핵협정을 탈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탈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핵협정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란 역시 핵협정에서 탈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협정 탈퇴 선언 직후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 TV로 중계된 연설에서 "만약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제약 없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면서 상황에 따라 핵합의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와 의회는 8일 이란과의 핵합의인 JCPOA에서 탈퇴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을 강하게 비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우려와 함께 지속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반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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